지난 주가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 발표 2주년이었군요. 2020년 10월 초, 선언문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서명한 후 이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 바 있습니다. 이 선언문을 작성했던 3명의 연구자는 각각 하버드, 옥스퍼드, 스탠퍼드 대학 교수였습니다. 학벌에 유독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기가 죽을 면면이었지만, 그들은 이 선언문을 작성했던 탓에 코비드 19 유행 내내 온갖 비난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죠.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에서 주장했던 바는 분명합니다. 전체 사회를 대상으로 바이러스 전파 방지에 초점이 맞춰진 방역정책은 그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에 고위험군 위주의 방역이 필요하며, 치명률 0%에 수렴하는 건강한 사람들은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은 이 선언문에서 제안했던 내용과 가장 유사한 방역 정책을 가졌던 국가로, 이미 한참 전부터 스웨덴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이 나오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에 대한 공식 반박문이 <존 스노우 비망록 (John Sone Memorandum)>이라는 이름으로 유명 의학저널인 Lancet에 발표됩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이 선언문을 작성한 3명의 학자를 “fringe epidemiologists”라고 비하하면서 즉각적 대응을 앤서니 파우치 박사한테 요구했던 미국 NIH 수장 프랜시스 콜린스 소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듯합니다. 아래 내용은 2021년 6월 행정정보 공개요청에 의하여 드러났던, 당시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던 이메일 중 일부입니다.
“This proposal from the three fringe epidemiologists... seems to be getting a lot of attention – and even a co-signature from Nobel Prize winner Mike Leavitt at Stanford. There needs to be a quick and devastating published take down of its premises.”
무려 31명의 연구자들이 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존 스노우 비망록의 주장은 백신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전파 억제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을 두고 "This is a dangerous fallacy unsupported by scientific evidence”라고 정면 비판했죠. 아마도 이 저자들은 스웨덴의 방역정책이 코비드 19 전에 존재했던 <호흡기계 감염병 팬데믹 표준 프로토콜>에 가장 근접한 정책이라는 점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신이란 고위험군에게 제한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이고, 결국은 건강한 사람들이 자연감염을 경험하고 지나가야만 공존 단계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건강한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이란 필요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전파 억제를 위한 방역 정책이 장기화되면 광범위한 신체 및 정신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가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확진자 최소화+ 백신접종률 극대화>를 목표로 했던 우리나라는 존 스노우 비망록의 주장과 가장 유사한 방역정책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글에서 반복해서 설명드렸듯, 방역 정책의 최종 성적표라고 할수 있는 초과사망에서 한국은 집단면역의 스웨덴보다 더 높습니다. 동아시아권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에가까운 방역 정책을 가졌던 일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더 높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존 스노우 비망록은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에 일찌감치 기권패 선언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첨언할 것은 존 스노우 비망록 저자들은 당시 자신들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대표적 성공 사례로 일본을 꼽았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유행 초기부터 무증상, 경한 증상자에 대한 PCR 검사를 제한함으로써 건강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지나가는 감염에 대하여 국가 개입을 최소화했던 국가입니다. 즉, 존 스노우 비망록보다는 그레이트 베링턴 선언문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스노우 비망록이 작성되던 2020년 10월 경 일본의 코비드 19 사망률은 세계 최하위권이었습니다. 교차면역과 같은 pre-existing immunity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하여 일말의 통찰력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저자들은 일본 성적이 좋은 것을 단순히 전파 억제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愚를 범한 것입니다.
다음 주, 질병청과 함께 K방역의 밑그림을 그리고 실질적 운용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던 대한 예방의학회 추계학회가 열립니다. 그런데 이번 학회의 기조 강연자로 초청된 해외연자가 바로 존 스노우 비망록의 저자이자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과 스웨덴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 소속의 Martin McKee교수더군요. 이미 명백한 실패로 드러난 선언문 작성자를 외국에서까지 모셔오는 학회 측의 의중은 도대체 뭘까요?
아마도 존스노우 비망록이야 어찌 되었건, K방역만은 실패가 아니었다는 말을 해외 학자의 입을 빌려서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코비드 19 관련 통계치는 포장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권 국가들과 비교하지 않고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서구권 국가와 비교하는 거죠. 유행 시작부터 끊임없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면서 진실을 호도해왔던 방역당국은 아마 이번에도 Martin McKee교수 발언을 다시 한번 자신들을 변호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예방의학회 추계학회는 K방역의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우리 자신의 시선에 의하여 복기되어야만 하는 자리였습니다. 동선추적의 K방역은 전면 락다운보다 더 위험한 21세기형 마녀사냥이 아니었는지, 동아시아권의 코비드19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위험한 감염병이었는지, 백신 패스는 심각한 의료윤리 위반이 아니었는지, 백신 이익-위험 분석에 오류가 없었는지, 무분별한 PCR검사로 유행을 과장하고 왜곡하지 않았는지, 학교 폐쇄가 정말 필요했는지, 수리 모델링이란 첨단 과학을 빙자한 허구가 아니었는지, 오미크론 유행시 초과사망이 왜 그토록 많았는지, 마스크 의무화 제도는 의미가 있었는지, 마스크 장기 착용 부작용은 없는 것인지, 감염병에 대한 19세기형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이 뜨거운 논쟁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대충 흉내만 내고 덮고 지나가는 쪽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K방역은 방향성 자체가 오류였던,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습니다. 그러나 질병청과 관련 학계는 이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듯 합니다. K방역에 눈이 멀었던 대다수 국민들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공공의 善이라 확신했던 자신들의 행위가 의미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사회에 심각한 피해만 끼쳤다는 사실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죠. 그러나 누군가는 먼저 용기를 내어야만 미래에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 브런치 독자 중 한 분의 자기 소개글입니다. “한때는 'K-방역'을 신봉했으나 그 부당함을 깨닫고 '멍청한 삶'에서 벗어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루빨리 방역이 중단되어 이 소개글을 지우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용기있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