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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Sep 29. 2022

왜 감기같은 감염병은 <반드시> 경험하면서 살아야하나?

혹 <감기가 암을 예방한다>와 같은 속설을 들어본 적 있나요? 아니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암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는요? 일견 듣기에 혹세무민 하는 궤변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특히 사람에게 발생하는 암의 약 20%가 감염성 질환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많은 지식들은 동전의 한 면만 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2006년 “Acute infections as a means of cancer prevention: opposing effects to chronic infections?”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저널에 발표된 바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만성 감염과는 정반대로 급성 감염은 암 예방의 수단이 될 수 있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고요. 오래전부터 급성기 감염 경험이 다양한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역학연구들이 보고되어 왔는데, 이 논문은 그 결과를 요약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감염병은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도 있고 높일 수도 있습니다. 급성인가 만성인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데, 급성감염은 암을 예방할 수 있으나 만성감염을 야기하는 감염성 질환들은 암 발생 위험을 높입니다. 급성감염 중 대표적인 것이 감기, 독감과 같은 호흡기계 감염병이고 만성감염 중 잘 알려진 것이 B형 간염, C형 간염, 인유두종 바이러스 등과 같은 종류들이죠. 


그리고 암환자, 특히 항암치료 중에서 발생하는 감염은 환자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만, 미생물 감염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법들이 현재 면역 항암치료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광암 환자들에게 약하게 만든 결핵균을 방광 내에 주입한 후 면역반응을 유도하여 방광암을 치료하는 시술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입니다. 여기서 약하게 만든 결핵균이 바로 BCG 생백신이기 때문에 백신 항암요법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러한 면역 항암치료의 원조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외과의사였던 윌리엄 콜리 박사입니다. 콜리 박사는 우연히 수술 후 열을 동반한 세균 감염이 있었던 육종 암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예후가 좋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에 기반하여 암 조직에게 세균을 직접 주입하는 치료법을 고안하고 이를 콜리의 독소(Coley's toxins)라고 불렀죠. 


그 당시 콜리의 독소는 몇몇 제약회사에서 상품화했을 정도로 나름 인기 있는 항암제였는데,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부작용이 심한 사례들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1963년 미국 FDA에서 사용금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암과 면역계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최근 콜리의 독소는 최초의 면역 항암요법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논문을 하나 링크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암세포란 특별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로 존재하는 한 누구에게나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생기는 세포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면 이들은 신속하게 제거되므로 생명체는 <동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부분 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죠.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기는 이유도 특별히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생기는 경우보다 정상적인 세포분열 과정 중 자연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흔합니다. 


즉, 암세포란 발암물질에 노출이 되던지 안 되던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계속 생기는 것이고, 어떤 사람이 암환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면역시스템의 힘입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면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초기 암세포들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병인 암으로 진행하게 되죠. 경우에 따라서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암과 면역계간의 긴밀한 관계는 면역항암제를 개발한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탈 정도까지 아주 인기있는  연구주제입니다. 우리 면역계는 암세포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나 특별히 다르게 인지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면역반응이 유도되기 위해서는 선천 면역과 획득 면역 간의 적절한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고, 모든 유기체는 면역계 훈련을 통하여 이런 상호작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자신의 면역계를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뭘까요? 홍삼? 산삼?  운동? 햇빛? 아닙니다. 바로 미생물에 대한 노출을 끊임없이 하면서 사는 겁니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 없듯이, 미생물에 대한 노출 없이는 면역계를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2021년 초 올렸던 “방역 vs. 면역: 공존 불가능한 두 세계”이라는 글에서 방역이란 기본적으로 미생물에 대한 노출을 인위적으로 막음으로써 건강한 유기체들을 결국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방역의 패러다임이 거의 3년 동안 국민들을 완벽하게 지배한 덕분으로 앞으로 각종 만성 질병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암도 그중 하나가 될 것으로 봅니다. 


제가 이 블로그의 주제인 호메시스를 소개하면서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니체의 말을 여러 번 인용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괜찮다"가 아닙니다.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우리가 살면서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지나가는 각종 급성 감염병입니다. 감기 같은 경미한 감염병은 "반드시"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병으로, 우리가 하루빨리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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