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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Nov 11. 2022

혈액 세척이 치매 치료에 효과적이라면??

몇 달 전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BMJ에 롱 코비드 치료와 관련된 심층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언론을 통해서도 널리 보도되었는데, 그들이 blood washing이라고 명명한 시술을 위하여 수천만 원을 사용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던 한 네덜란드 정신과 의사의 사례와 함께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위하여 해외 원정까지 가는 롱 코비드 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 후유증 없애러 혈액 세척"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었더군요. 


그러나 BMJ 원 기사를 읽어 보면 효과가 없었던 환자보다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인터뷰한 환자들의 숫자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중 한 명이 영국의 호흡기 질환 전문 의사입니다. 이 의사는 letter to editor까지 보내서 자신은 그 치료 덕분에 지금 살아있다고 말하면서 한두 명의 부정적 경험만 부각시킨 BMJ 기사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롱 코비드는 정의부터 시작하여 그 실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으며 오늘 동아사이언스 기사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논문은 매우 과장된 것이라고 봅니다만, 소수의 진짜 롱 코비드 환자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봅니다.  


혈액 세척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너무나 사이비스럽게 들립니다. 그러나 혈액 세척은 apheresis라는 공인된 치료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환자 혈액을 체외로 내보내서 여과기로 특정 성분들을 거르고 다시 몸속으로 혈액을 넣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몇 가지 이유로 apheresis가 롱 코비드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관련 내용을 letter to editor로 작성하여 BMJ에 보냈죠. 링크한 글에 참고문헌과 함께 그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긴 합니다만 지금부터 우리말로 요약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코비드 19 사태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apheresis가 21세기 의학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치료법이 될 거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제 책 <호메시스>를 읽은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거기에 POPs라고 부르는, 지용성이 높으면서 오랫동안 체내에 잔류하는 성질을 가진  화학물질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질병의 감춰진 진짜 범인으로 POPs와 같은 수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만성 노출을 지목한 바 있죠. 이들은 미토콘드리아 독성물질로 작용할 수 있으며 기전적으로 만성 염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호메시스>는 이미 생태계와 인체를 광범위하게 오염시킨 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쓴 책입니다. 그러나 이미 환자가 된 경우에는 좀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고요. 그러면서 제가 주목했던 방법이 바로 apheresis였습니다. 특히 치매 환자에게 시도해 볼만 하다고 보았습니다. 대부분 만성질환이 그렇듯 치매 역시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와 만성염증이 핵심 기전이므로 주기적인 apheresis로 미토콘드리아 독성물질들을 걸러줄 수 있다면 치매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예비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었죠.  


그러던 와중에 코비드 19가 터지고 모든 것이 중지된 상태에서 기존 연구는 잠시 접고 코비드 19 모드로 살아가던 중, <치매환자들을 대상으로 apheresis의 효과를 평가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이 이미 스페인과 미국의 연구팀에 의하여 시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치매 분야 탑 저널 중 하나인 Alzheimers & Dementia에 발표된 이 논문은 apheresis후 치매 환자들의 인지 기능과 일상생활 기능이 즉각적으로 호전되거나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임상시험의 초점은 apheresis 자체가 아닌 그와 함께 시행된 알부민 교체에 있었습니다. 연구 가설이 apheresis시 알부민을 교체하면 소위 치매 원인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를 낮출 수 있고 따라서 치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환자 뇌척수액에서 측정한 아밀로이드 베타치가  가설과 전혀 맞지 않아서 연구자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듯했고요. 즉 apheresis가 치매에 매우 유용한 치료법으로 보이나, 그 효과를 설명하기 위하여서는 다른 기전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논문을 읽으면서 apheresis가 치매 환자에게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혈액 중에 존재하는 POPs와 같은 미토콘드리아 독성 물질을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얼마 전 이러한 저의 주장 적어서 Alzheimers & Dementia에 보냈는데 단 며칠 만에 채택되었다는 답변을 받습니다. 


POPs와 같은 미토콘드리아 독성물질의 존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수수께끼와 같은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코비드 19 사태 전에 올렸던 "나이 들어 무작정 살 빼기, 치매로 가는 지름길입니다"시리즈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 블로그의 주장을 어떻게 믿느냐는 분들은 지금 링크하는 논문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제가 대중을 위한 글을 올리고 난 후, 그 내용 그대로 논문으로 작성하여 역시 Alzheimers & Dementia에 발표했습니다.  


다시 롱 코비드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치매같은 만성질환뿐만 아니라 코비드 19와 같은 감염병 발생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만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대부분 감염병은 자신이 가진 면역시스템의 힘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합니다. 코비드 19 치명률이 높은 고령의 기저질환자들은 거의 다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된 사람들이라고 봐야 하고요. 유행 초기에 올린 "신종 코로나 대응, 면역력 일깨우는 방법 ABCDE"에 언급된 많은 생활 습관들은 바로 미토콘드리아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롱 코비드 발생에도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롱 코비드 환자가 주로 호소하는 증상들은 대표적인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질병인 myalgic encephalomyelitis/chronic fatigue syndrome 증상과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apheresis가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과 일상생활 기능을 호전시켰듯, 심각한 롱 코비드 환자에게도 의미 있는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제가 BMJ에 보낸 letter to editor의 요지입니다. 


현재 미토콘드리아는 학계에서 매우 핫한 연구주제입니다. 그러나 현시대 연구자들은 수많은 환경오염물질들이 저농도에서 미토콘드리아 독성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미토콘드리아만 쳐다보면서 최첨단의 기술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난센스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수백 편의 논문이 쏟아진다 하더라도 작금의 연구자들이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의료계는 apheresis와 같은 기술이 가진 잠재력에 시급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 공기, 토양, 먹이사슬 등 모든 것이 오염되어 버린 현대사회>와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와 만성염증>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약물 처방 중심의 현대 의학에 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지 납득이 갈 겁니다. 잘못된 고정관념만 가지고 BMJ 기사와 같이 무조건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apheresis가 매우 고가의 부담스런 치료법입니다만, 기술혁신을 통하여 충분히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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