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 기대를 걸었던 치매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 신약은 소위 치매 발생의 핵심 기전이라고 하는 신경세포의 독성 단백질 양을 감소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서 만들어진 약들이었죠. 그러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도중 성공 가능성 없다는 중간 평가가 나와서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아쉬워하는 연구자들도 많지만 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봅니다. 독성 단백질의 축적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니까요.
치매.. 모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죠. 차라리 암이 낫고 죽음이 낫지 치매는 걸리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치매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 특히 왜 어떤 사람은 치매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걸리지 않는지에 대하여서 알고 있는 지식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몇 가지 알려진 위험요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치매 발생 위험 확률은 상당히 낮습니다. 많은 것이 블랙박스로 남아있다는 의미입니다.
미세먼지가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기사, 아마 다들 보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미세먼지는 치매의 위험을 높일 수 있죠. 그러나, 제가 “호들갑 좀 그만 떨자는 미세먼지에 대한 정직한 이해”라는 글에 적어두었듯이 미세먼지가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은 WHO 노출 허용기준보다 훨씬 낮은 농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를 강화하고, 방진 마스크 상시 착용하면서 인공지능 탑재한 공기청정기 돌린다고 예방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그 글에서 현재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연구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코끼리 그림을 보여 드리면서 미세먼지의 문제는 그 코끼리의 왼쪽 앞다리 정도 된다고 비유한 바 있습니다. 치매를 일으킨다는 미세먼지, 즉 왼쪽 앞다리를 잘라 버려도 그 코끼리는 여전히 문제없이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미세먼지에만 집착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죠. 우리의 목표는 코끼리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그 코끼리의 몸통 이야기를 해 드릴까 합니다. 몸통과 깃털은 권력형 비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몸통에 대한 이해 없는 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환경호르몬에 대한 대책들은 꼬리 자르기에 불과합니다. 특히, 몸통에 대한 고려 없이 하는 이들에 대한 연구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연구비 받고 논문 쓰는 데만 의미가 있을 뿐, 현실에 나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 몸통은 애써 못 본 척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왜 그럴까? 혼자 고민을 좀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이를 고려하는 순간, 현재 하는 많은 연구들의 존재 기반을 흔들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 개인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논문 편수로 대학과 교수의 질을 정량화하고 서열화하는 저급한 풍토가 가지고 온 예정된 결과라고 봅니다. 진리 탐구?? 그 딴 건 지나가던 반려동물한테나 던져주는 걸로..
적다 보니 열 좀 받았습니다만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서..^^ 몸통 이야기를 계속하죠. 이 이야기는 제가 연구하는 것, 논문 쓰는 것 따위는 때려치우고 하루 빨리 세상과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 뉴스에 가끔 나오는 뚱뚱한 환자들이나 노인들이 더 오래 산다는 비만의 역설 (obesity paradox)이라고 알려진 현상을 설명하는 기전이 되기도 하고요.
제가 “운동 안 하고 살 빼기, 그 달콤한 악마의 유혹 ”이라는 글에서 우리의 지방조직 내에 축적되어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에 대하여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이 놈들이 바로 몸통입니다. 즉, 진정한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부에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놈들의 근원을 따라 들어가면 궁극적으로는 다 외부에서 들어온 놈들이긴 합니다만 현시점에서 그런 근원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놈들은 태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기, 물, 음식을 통하여 들어오기 때문에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죠.
특히 우리는 치매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방조직 내에 축적된 이런 화학물질들의 상당수가 신경독성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부터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그 시절의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 수 있다 할지언정, 이 지방조직 내에 축적되어 있는 화학물질들을 그대로 가져가는 한, 치매를 비롯하여 현대사회에 만연한 질병들을 여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뇌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조직은 일종의 보호 장기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수많은 화학물질들 중 일단 내 몸 안에 들어왔는데 쉽게 처리가 안 되는 놈들은 지용성이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놈들은 일차적으로 지방조직에 가서 저장이 됩니다. 들어오긴 왔는데 저장될 지방조직이 부족하다.. 그러면 이놈들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기가 뇌입니다. 신경계는 지질 함량이 높은 대표적인 장기이기 때문입니다.
선형성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도그마입니다. 소금은 작게 먹으면 먹을수록 좋다는 선형성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듯, 지방의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나쁘다는 선형성의 패러다임에 갇혀있죠.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목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생명체는 비선형성이 기본값입니다. 지방조직의 양 조차도 그렇습니다. 적당량의 지방조직, 특히 “제대로 기능을 하는 지방조직”은 모든 것이 오염된 이 21세기에 반드시 갖춰야 할 건강의 필수조건입니다.
교과서적으로 비만은 치매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비만과 치매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결과들을 보입니다. 젊어서 뚱뚱했던 사람들은 노인이 되면 치매 발생 위험이 높은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 뚱뚱한 사람들은 오히려 치매 발생 위험이 낮아지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또한 치매 걸리는 환자들 중에는 진단받기 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체중이 감소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재는 이러한 결과를 체중감소가 치매의 전구증상 중 하나로 나타나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해석이 맞습니다. 치매 진단이 내려지기 전부터 뇌에서는 은밀하게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는데 특히 미각, 후각 기능 저하가 두드러집니다. 그러면 입맛이 떨어져 체중감소가 먼저 나타났다가 좀 더 진행되어 인지기능까지 떨어지면 그때서야 치매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체중감소는 치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그런데 정말 비만은 치매의 진정한 원인이며 체중감소는 치매의 원인과는 아무 관계없는, 치매의 결과일 뿐인 걸까요?
To be continued (두번째 글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