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이라고? 한번 기다려 보자

첫 번째 이야기

by 이덕희

구독자가 천명쯤 되면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더니만 구독자 늘어나는 속도를 보니 제 살아생전 그 날이 올 것 같지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입이 근질거려 안 되겠네요^^. 지금부터 시리즈로 태극권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2015년 11월에 나온 “호메시스:건강과 질병의 블랙박스”라는 책 말미에 제가 뇌종양으로 진단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루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자평 타평 나름 꽤나 재미있는 책이라서 ㅋㅋ거리며 유쾌하게 읽어나가다가 마지막에 가서 충격받은 분들이 좀 있었던 것 같더군요. 왜 굳이 그 이야기를 포함시켰을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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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시점은 원고를 출판사로 넘기기 직전인 2015년 6월이었습니다. 악성이 아닌 양성이긴 했지만 두개골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발생한 종양은 양성이라도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죠. 저한테는 이미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상태였고요.


처음에는 책 내는 것을 포기했었죠.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건강서적쯤에 속할 텐데 저자가 뇌종양에 걸렸다니.. 흡사 주식하다가 쪽박 찬 인간이 “주식 대박 나는 법” 책을 쓴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책을 포기하고 나니 너무 아쉽더군요. 저에게 그 책은 제가 그동안 발표했었던 논문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어요. 병 때문이 아니라 포기한 책 때문에 우울증이 올 지경이었죠.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난 후 다시 책을 내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단, 제가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포함하는 걸로 해서요. 그 이야기를 빼고는 도저히 책을 낼 수 없겠더라고요.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을 내는 것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소한 주식하다 이렇게 쪽박을 차 버렸다는 사실을 성실히 공지해야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는다 싶었죠.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 교과서적인 치료법으로 나와있는 수술, 방사선 치료, 지켜보기 3가지 중 일단은 “지켜보기”라는 방법을 선택하였노라고 적어두었죠. 6개월 후 다시 MRI를 찍어보고 조금이라도 자란 기미가 보이면 즉시 치료를 시작할 것이라는 다짐까지도요.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그 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시죠?


지금이 2019년 9월이니 진단받은 지 4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라지 않아서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단받고 나서 한 1년 동안은 거의 3~4개월에 한 번씩 MRI를 찍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몸이 조금이라도 피곤해지면 이명이 심해지고 가끔씩은 아프기까지 하니 그때마다 종양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MRI를 찍고 나면 논문에서 보았던 평균값보다 더 빠르게 자라는 듯한 종양을 보면서 며칠씩 우울해지곤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생각했던 6개월을 넘기고 1년을 넘기고 무려 4년을 더 넘기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드릴까 합니다. 누구한테는 매우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누구한테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4년 동안 있었던 일들은 제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일보다 흥미진진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죠. 아~ 내가 이 세계를 모르고 죽었으면 정말 억울해서 눈도 못 감았겠다 싶을 정도로..


두번째 이야기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