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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진짜 자폐 위험을 높일까?

by 이덕희

미국 정부에서 타이레놀이 자폐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듯하군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늘 그렇고 그런 동네이니 차치하고, 역학자로서 이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제가 몸담고 있는 이 학문 분야에 지극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들 손에 쥐고 있는 몇몇 변수들 만을 가지고 각종 통계기법으로 포장하는 것을 두고 과학이라고 믿는 다수의 연구자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 위험을 높인다는 역학 연구? 당연히 있습니다. 관계없다는 역학 연구? 역시 당연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 걸까요? 앞으로 연구를 더 열심히 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걸까요? 아마 10년 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서 지금과 별다를 바 없는 논쟁을 더 격렬하게 벌이고 있을 겁니다. 지금껏 역학 분야에서 나온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그랬듯..


일단 학계에서 역학이 가진 그 엄청난, 극복불가능한 문제점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세상은 그들이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소위 과학적 증거라는 것의 허구를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문제들은 표본크기를 수백만, 수천만 만든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온갖 현란한 통계기법을 동원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타이레놀이 자폐 위험을 높이는 이유가 해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글루타치온을 낮춰 해독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타이레놀만 글루타치온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 즉 환경을 통하여 우리가 끊임없이 노출되는 수많은 저농도 환경오염물질들이 <만성적으로> 글루타치온을 낮추는 훨씬 더 중요한 요인입니다.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농약, 환경호르몬, 중금속 등등...


반면 타이레놀이든 뭐든 <일시적으로> 글루타치온이 떨어지는 상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 중에도 글루타치온을 소모하는 종류들이 많습니다. 글루타치온의 일시적 저하는 그 자체가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바로 글루타치온 합성증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글루타치온 합성에 필요한 적절한 재료의 공급과 자율신경계 조절을 통하여 내 몸의 회복을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비밀은 황(S) 많이 함유된 음식에 있습니”와 “자율신경계, 호메시스와 해독을 관장하는 사령탑”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현시대 엄마 혈액에 존재하는 수많은 환경오염물질들은 쉴 새 없이 태아들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이들은 자폐와 같은 신경발달장애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태아시기에는 소위 혈액-뇌 장벽이 느슨하기 때문에 혈액 내 오염물질들이 보다 쉽게 뇌로 옮겨갑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 장벽이 훨씬 더 느슨해지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열을 경험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때 임산부들은 타이레놀을 복용하게 되죠. 만약 이번 발표로 산모가 고열을 방치하게 되면 아마 향후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산모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했다는 점인데, 끊임없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만성적으로 혈액-뇌 장벽을 느슨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입니다.


출생 후 정상 발달을 하다가 백신 접종 후 퇴행을 보였다는 사례들도 이 관점에서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영유아의 뇌에 문제를 일으킬 어떤 조건에 근접했을 때, 이들이 백신 접종 후 고열을 경험하게 되면 그 자체가 트리거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번 미국 발표에서 MMRV와 같은 혼합백신 접종을 권장하지 않았는데, 혼합백신은 고열을 더 많이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현명한 조언이라고 봅니다.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 문제는 <혼합체와 비선형성>이라는 복잡성으로 인하여 현재의 과학으로 그 전모를 파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임신 시 타이레놀을 복용해서>와 같은 1차원적인 설명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아직도 자폐는 단지 진단이 증가했을 뿐이고, 자폐 원인은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는 연구자들도 심심챦게 보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자폐 증가는 명백한 팩트이며, 자폐의 병리적 기전으로 잘 알려진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와 만성염증 발생에 방안의 코끼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한, 타이레놀이 시장에서 완전 퇴출된다 한들 자폐든 치매든 모든 신경계 질환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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