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북부, 한라산보다 3배나 더 높은 눈 덮인 산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계곡에 훈자라고 불리는 외딴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대표적인 장수촌으로, 과거 훈자왕국 시절에는 평균수명이 100세가 넘었다는 소문까지 있었죠. 지금도 7,80세가 넘어도 만성병 하나 없이 건장한 노인들이 흔한데, 관련 다큐 하나를 링크합니다.
한 때 훈자 사람들은 암이 없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암이 진짜 없는 것이 아니라 의료시설이 없었던 탓에 진단받지 않고 사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죠. 하지만 굳이 진단받지 않아도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곳은 매우 흥미로운 지역입니다.
따라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연구에 돌입하고, 그러면서 유명해진 식품이 살구입니다. 훈자에는 집집마다 살구나무가 있고 살구를 이용한 음식을 사시사철 먹는데, 거의 모든 식단에 살구씨 기름을 기본으로 사용합니다. 네, 바로 현재 저탄고지, 케톤식, 카니보어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절대로 피해야 할 대표적인 식품으로 꼽고 있는 식물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입니다.
살구씨에 포함된 대표적인 독이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성분입니다. 이 성분은 인체 내에서 시안화수소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시안화수소가 칼륨과 결합하면 소위 청산가리가 됩니다. 청산가리라니... 과연 모든 식물은 독이며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손색없는 독극물 성분으로 보입니다.
또한 훈자 사람들은 다양한 식물을 직접 재배하여 먹는데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으로 통곡물, 콩, 토마토, 감자 등이 있습니다. 식물독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 서적인 스티브 건더리 박사의 <플랜트 패러독스>를 보면 이런 식품들은 모두 항영양소라는 렉틴이 포함된 식품으로,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종류로 분류하고 있죠.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시금치는 특별히 인기 있는 식품이라고 합니다. 네, 바로 옥살산으로 가득 차 있어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그 시금치입니다. 훈자 사람들은 통곡물과 콩으로 만든 반죽, 시금치, 감자, 살구씨 기름 등을 사용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피자를 만듭니다.
즉, 훈자에서는 날마다 각종 식물독으로 범벅이 된 요리를 즐기는 것으로 보이며, 단탄지 관점에서 보면 탄수화물 섭취량이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그러나 식물독과 탄수화물 때문에 온갖 병이 다 생긴다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은 그 지역이 손꼽히는 장수촌이라는 사실입니다. 70세에 아기를 가지는 것이 기적이 아닌 그런 곳..
코로나 시기 백신 접종률이 올라갈수록 확진자가 폭증하고 사망자가 증가하는 기이한 현실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Safe and effective를 외치는 전문가들과 이를 추종하는 대중들을 보면서 느꼈던 절망감을 여러 번 토로한 바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독이 가득하다는 식물성 식품을 먹으면서도 건강하게 사는 지역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식물독을 둘러싼 논쟁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상식적일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작동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군요.
인간의 어리석음이야 코로나 사태 때 익히 증명된 바 있지만, 조상 대대로 먹어왔던 자연식품 안에 들어있는 특정 성분들을 두고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구분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연식품이란 다른 생명체의 일부 혹은 전체로 만들어진 것으로, 어떤 음식이든 수많은 성분들의 혼합체로 존재하죠. 우리가 자연식품 안에 포함된 특정 성분들을 두고 좋니, 나쁘니 왈가왈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유는 현실에서 그 성분들을 단독으로 섭취하는 일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식품도 오로지 전체로만 작동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은 식물성식품을 피함으로써 도움이 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땅콩을 피하고, 구강 점막이 헐어 있는 사람들이 소금을 피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누군가 특정 식품을 피하고 어떤 증상이 좋아졌다 해서, 그 식품 자체를 인간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분류하는 일은 대표적인 논리의 오류로 볼 수 있습니다만, 개인의 경험이 식물독이란 개념과 만나면서 설득력 있는 과학적 증거 정도로 격상되었더군요.
한편 최근 장수촌으로서 훈자의 명성은 급속히 쇠락합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통 생활양식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된 상태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식품들만을 섭취했던 이 지역에 수많은 가공식품과 정제탄수화물 식품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물, 토양, 공기 등 각종 환경오염도 빠른 속도로 일어납니다. 현재 사람들의 건강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평균수명이 예전에 비해 많이 짧아졌다고 합니다.
훈자를 포함하여 소위 장수촌으로 알려진 블루존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보면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먹든 자연식품 위주라는 공통점이 있죠. 그 외에도 몸을 많이 움직이고, 사람들 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도 예외 없는 공통점입니다. 따라서 모름지기 건강을 추구한다는 분들이 렉틴, 옥살산 등과 같은 지엽적인 지식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식습관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탄고지 vs. 현미채식, 무엇이 더 건강한 식단일까?"에 적었듯, 현재 식단을 둘러싼 논란 대부분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의미 없는 논쟁이기도 하고요. 단탄지 관점에서 보면 양극단의 식단이 호메시스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식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그때부터 세상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최적화된 식단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마스크나 백신에 휘둘렸던 대중이나 식물독 피하기에 집착하는 대중이나 본질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엉뚱한 놈을 범인으로 몰아 우리를 진정으로 병들게 하는 요인들로부터 사람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 폐해가 더 큰 것 같기도 하고요. 코로나 시기 글쓰기가 별 의미가 없었듯, 이런 글도 부질없어 보입니만.. 아무쪼록 새해에는 정말 중요한 큰 그림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