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식품피라미드

by 이덕희

미국 정부가 거의 반세기 이상 대중들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던 식품피라미드를 완전히 뒤집은 획기적인 식이 권장 안을 발표했군요. 제 눈에는 피라미드 위에 새겨진 “Eat Real Food”가 핵심메시지로 보였습니다만, 뒤집힌 피라미드의 상징성이 워낙 강력해서인지 글씨 따위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싶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자연식품을 두고 벌어졌던 논란-채식이냐? 육식이냐?-을 꽤나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봤던, 그리고 양쪽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개정안은 통쾌하기조차 하더군요. 모든 영역의 자연식품들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최소한 이번 안을 만든 전문가들은 <인간은 잡식동물>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피라미드란 그 자체로 위계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위쪽에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종류일수록 더 중요하고, 아래에 작게 위치한 종류일수록 하찮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뒤집힌 식품피라미드의 맨 위에 놓인 것은 소고기, 닭고기, 치즈, 우유, 브로콜리, 당근, 토마토, 콩 종류고 맨 아래에 놓인 것이 통곡물류군요.


그런데 만약 새로운 식이 권장 안이 피라미드가 아닌 도넛형으로 제시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거기에 더하여 도넛 내부에 “Eat Real Food”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적어놓았더라면? 아마 훨씬 더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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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식물독을 먹으며 사는 장수마을, 훈자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탄수화물 섭취량이 매우 높았던 이 지역 사람들이 오랜 세월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왔는지를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훈자 사람들이 이번 미국의 식이 권장 안에 따라 식단을 완전히 바꿔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정반대로 주로 동물성 식품을 먹으며 살아왔던 마사이부족이나 에스키모인들이 이번 권장 안에 따라 식물성식품을 대거 식단에 포함시키면요? 결코 그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즉, 지역에 따라 전통적으로 섭취해왔던 다양한 식품들이 존재하며, 해당 지역 사람들은 그 먹거리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동일 지역에서도 건강한 사람을 위한 식단과 환자를 위한 식단이 다르고, 환자도 어떤 환자인가에 따라 최적의 식단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가공식품과 정제탄수화물 식품을 피해야 한다는 공통점은 존재하죠. 따라서 도넛을 기본형으로 잡고, 지역에 따라, 본인 건강상태에 따라 자연식품의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렸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있군요.


먹거리와 관련된 가장 큰 오류중 하나가 인류 모두에게 통용되는 하나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환상입니다. 예를 들면 WHO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루 소금을 5g 이내로 섭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놓는다는 것 자체가 과학의 탈을 쓴 블랙코미디임을 <소금, 과연 작게 먹으면 먹을수록 좋은 것일까?> 시리즈 글에서 적은 바 있습니다만, 비슷한 일이 20세기 내내 거의 모든 먹거리들을 대상으로 벌어졌습니다.


뒤집힌 식품피라미드는 그 자체로 현재 건강 관련 연구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잘못된 도그마가 세상을 한 번 지배하고 나면 이를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요. 애초부터 식품 피라미드와 같은 것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20세기가 되면서 세상에 쏟아진 가공식품과 정제탄수화물 식품만 피하도록 교육하고 각 지역마다 지금껏 살아온대로 살았더라면, 아마 인류는 더욱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일은 단지 먹거리와 관련해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급히 뒤집혀야 할 피라미드들이 곳곳에 존재하죠. 코로나 사태로 세상에 드러난 감염병에 대한 잘못된 패러다임도 그중 하나고요. 세상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수시로 드는 요즘, 다음 뒤집힌 피라미드는 어느 분야에서 등장할까 자못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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