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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an 07. 2020

슈퍼문 뜨던 날

네 번째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태극권을 시작한 지 2달쯤 지났어요. 그 해 추석은 달과 지구가 아주 가까워져 초대형 보름달이 뜬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달의 크기가 어찌 되었건 전혀 저의 관심사가 아니었는데, 관장님께서 수련할 때 몇 번이나 당부하시더군요. 이번 추석에 슈퍼문이 뜨면 꼭 집에서 참장공을 해보라고.. 사실 그 전에도 일주일에 두 번 도장에 와서 수련할 때 외에도 매일 집에서 참장공을 하라는 숙제를 주셨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숙제거든요. 



추석 전 날 저녁, 과연 소문대로 엄청난 보름달이 아파트 베란다 앞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관장님의 당부가 생각났어요.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죠. 화성탐사선을 보내는 이 시대에 오로지 슈퍼문이 떴다는 이유만으로 뭔가를 시도해 본다는 자체에 거부감이 느껴졌거든요. 그때 불현듯 글 하나가 생각나더군요.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고,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말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불꺼진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과 건너편 아파트 불빛이 방 안에 가득했습니다. 잡다한 가구들과 일상의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는 안방 풍경을 보니 영 내키지가 않더군요. 그러나 이왕 들어온 것, 어두운 방구석에 서서 늘 깔리던 음악도 없이 가만히 참장 자세를 한번 잡아보았습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늘어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참장공을 하고 있는 제 꼴이 좀 우습게 생각되어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즈음일 겁니다. 갑자기 왼 팔이 서서히 돌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 어? 어라?.. 오호~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건가? 호기심에 잠시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을 그냥 지켜봤어요. 조금 지나니 이제는 왼 손목을 털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내가 무의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동작이 점점 커지는 겁니다. 어느 순간 다리에서도 진동이 오기 시작했어요. 헉~ 이거 뭐야?? 접신이라도 됐나??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만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모든 것이 딱 멈추더군요. 


한참 동안 당황하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야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겠더군요.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제가 경험한 일을 정리하면 모든 움직임은 왼 팔과 왼 어깨에 집중되었다는 점과 움직임의 시작은 의식하지 않고 나타났으나 움직임의 멈춤은 제가 의도하는 순간 바로 가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왼 팔과 왼 어깨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아주 신기하더군요. 관장님이 늘 말씀하시길, 몸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본인이 아프고 불편한 곳부터 시작된다고 하셨거든요. 사실 제가 왼 어깨 주위의 통증 때문에 근 10년 동안 왼팔을 위로 쭉 뻗거나 뒤로 돌리는 동작을 할 수가 없었어요. 뇌종양도 왼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요. 슈퍼문 뜨던 날의 경험은 너무나 강렬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다시 한번 더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더군요. 


다음 태극권 수업시간이 돌아왔어요. 맘이 좀 설레더군요. 참장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5분이 아니라 1분도 되지 않아 추석 전날 경험했었던 바로 그 동작이 바로 시작되는 겁니다. 그 날 제가 참장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관장님은 변화를 금방 알아차리시더군요. 슈퍼문 뜨던 날의 에피소드를 모두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관장님은 아주 흐뭇해하셨고 다른 분들은 아주 신기해하더군요. 


처음 신호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일단 움직임이 시작되니 거침이 없더군요. 늘 아팠던 왼쪽 어깨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돌아가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참장공을 하는 동안에는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내 몸 안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그냥 나의 뼈, 관절, 근육은 따라가기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 팔, 허리, 골반까지 움직임이 진행되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모든 움직임은 제가 의식적으로 멈춰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에 딱 멈춰지는 동작이었어요. 그러기를 두 달, 왼 팔과 어깨를 어떻게 움직여도 더 이상 통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5년 11월 1일, 드디어 호메시스 책이 세상에 나왔어요. 관장님께도 한 권 드렸죠. 제가 왜 태극권을 시작했는지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다섯번째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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