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네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첫 진단을 받고 나서 1년 동안은 거의 3~4개월에 한 번씩 MRI를 찍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주 찍는 것은 임상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명이 심해지고 증상들이 심상챦게 생각되면 맘이 불안하니까 자꾸 찍어보게 되더군요. 보통 그런 정도의 짧은 기간에는 크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자라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 것 같았어요.
진단 6개월을 넘기면서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종양이 자라는 것이 확실하니까 치료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계속 망설여지더군요. 청신경 종양의 크기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 논문들을 찾아보니 종양이 자라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빨리 자라는 듯 하다가 안 자랄 수도 있고, 반대로 거의 안 자라는 듯 하다가 갑자기 자랄 수도 있고요. 논문에 나오는 평균값이야 어쨌든 개인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겠지만, 자꾸 전자의 경우가 나의 경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겁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최소한 1년까지는 기다려 보고 치료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2016년 4월, 아주 우울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때는 그 전보다 MRI를 좀 더 촘촘하게 찍어 보았는데 그 전 사진에서는 놓쳤던 종양 하나를 더 발견하게 됩니다. 5번 뇌신경에 작은 종양이 하나 더 있더군요. 그동안 이명이 심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증상 외에도 가끔씩 왼쪽 얼굴 뺨 부위에 흡사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이 한참 동안 찾아왔다가 사라지고는 했었어요. 청신경 종양 때문이라고 볼 수 없는 위치라서 왠지 불안한 맘이 있었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된 거죠.
그날 밤은 잠도 잘 오지 않더군요. 제가 호메시스 책에는 청신경 종양만 적어두었지만, 사실 처음 진단받을 당시 이미 제가 가진 뇌종양의 숫자가 2개였었거든요. 당시 청신경종양은 심각한 증상을 발생시켰지만 다른 뇌종양은 아직 특이할 만한 증상을 보이지 않은 상태였고요.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하나를 더 발견하게 된 거죠.
MRI상 확인되는 뇌종양의 숫자가 총 3개라.. 그렇다면 이건 사진상 그렇다는 것일 뿐, MRI상 아직 확인되지 않는 아주 작은 종양까지 더하면 아마도 내 머릿속에는 종양이 10개, 아니 20개도 넘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이 3개만 치료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나머지 것들도 언제든지 MRI상 확인될 수 있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신경외과 교수님이 유전자 검사를 한 번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신경섬유종증 (Neurofibromatosis)이라는 유전성 질환이 있습니다. 이 유전성 질환은 양쪽 청신경에 모두 종양이 있을 때나 혹은 한쪽 청신경에 종양이 있고 다른 신경 쪽에 종양이 2개 이상이 있으면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저와 같은 경우가 후자에 속합니다. 만약 양쪽 청신경에 모두 종양이 생기면, 수술 들어가기 전에 수화부터 배운다는 슬픈 이야기까지 듣습니다.
평소 유전자가 질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연구자입니다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유전자 검사를 보내봤습니다. 몇 주 후 해당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과 통보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