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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Feb 19. 2020

모든 감염병은 신종으로 시작해 공생으로 마무리됩니다

어제 제가 사는 도시에 31번 확진 환자가 등장했습니다. 그 환자가 퍼트린 바이러스 덕분에 하루 만에 확진자가 10명 이상 추가되고 대구시 4개 대학병원 중 3군데 응급실을 폐쇄했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응급실 폐쇄라니.. 지금까지 이 대학병원들의 응급실을 발 디딜 틈 없게 만들었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진짜 응급환자들보다 신종 코로나 감염환자가 더 위중한 환자로 격상해 버린 듯한 지금의 상황이 무슨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이건 소 잡는 칼로 바퀴벌레 잡으려고 휘두르는 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 안에서 소 잡는 칼을 휘두르면 바퀴벌레는 도망가고 자칫하면 옆에 서있던 구경꾼들만 다칩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 방지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듯한 이 분위기가 얼마나 가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수많은 신종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텐데, 그때마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대응할 건지 정말 궁금합니다. 오대양 육대주가 하루에 연결되는 이 21세기에 혹시 19세기 방역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급히 재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종 감염병에서 중요한 것은 확진자 수가 아니라 사망자 수입니다. 경미한 신종들의 경우, 연구자들한테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일반 대중들은 신경 쓸 필요 조차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확진자들의 임상경과를 보면, 별 치료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30명 정도였던 지난 주말까지 완치 환자 수가 7명이었고 중증환자는 없었다는 공식 보고입니다. 대구를 초토화시킨 31번 환자는 2시간이 넘는 기도회를 두 번씩이나 참가하고 뷔페도 즐길 만큼 견딜만한 증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의 결과를 두고 볼 때, 과연 이 신종 코로나가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의 대학병원 응급실을 줄줄이 폐쇄할만한 사안인지 차후에 심각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중국에서는 진료하던 의사도 죽고, 일가족도 죽고.. 하는 공포스러운 뉴스가 여전히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신종감염병 유행이 없었던 2018년도 우리나라 폐렴 사망자수가 2만명이 훨씬 넘었습니다. 다만 신종이 아니었을 뿐이죠. 따지고 보자면 현존하는 감염병들 역시 처음 시작할 때에는 모두가 신종이었습니다. 유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검사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이들을 우리가 실시간으로 인지하게 되었을 뿐, 신종감염병은 지구 탄생이래 늘 생명체 역사와 함께 해 왔습니다. 심지어는 현재 우리의 건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공생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도 처음에는 신종감염병으로 시작했습니다.  


미국 테네시 대학에 전광우라는 한국인 연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연구자는 아메바를 가지고 주로 실험을 했었는데 우연히 세균 감염으로 아메바가 거의 전멸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살아남은 몇몇 아메바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아메바 내에는 세균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실에서는 살아남은 아메바들을 번식시켜가면서 실험을 계속했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놀랍게도 이 아메바에서 세균을 제거하면 아메바가 죽어버린다는 것을 관찰하게 됩니다. 즉, 그동안 아메바는 이 세균이 존재해야만 생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진화를 해버린 겁니다. 이 연구결과는 1972년 Science에 발표된 바  있습니다. 


아메바 입장에서 볼 때, 처음 박테리아 감염은 치사율 99%가 넘는 무시무시한 신종감염병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메바의 경우 박테리아와 결국은 공생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비슷한 사건들이 지구 생태계에서는 일상화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생명체의 진화 원리라는 것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경우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의 단위를 넘어서서 발생하는 사건이므로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겠지만 다를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 유전자의 8%가 처음에는 신종감염병의 얼굴로 인류의 조상과 마주쳤을 고대 바이러스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유전자를 없애면 우리의 면역체계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장내 공생미생물의 중요성이야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상식이죠. 


수십 년간 연구자로 살면서 현대사회가 질병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기본 인식체계에 큰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감염병이든 만성병이든,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그 오류가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류에 기반하여 열심히 시스템을 만드는 소위 전문가들과 그  시스템 하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감염병의 경우 정치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안을 해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더욱 무겁고 답답한 날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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