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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Feb 07. 2020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쉬운 상대가 감염병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가 뉴스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지 몇 주가 지난 것 같습니다. 확진자들에게 고유 번호 붙여가면서 매일 카운트하고 환자가 거쳐 지난 간 곳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 모두 폐쇄하고 소독한다고 정신없습니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학생들 개학조차도 연기한다고 합니다. 저 자신 역학자이긴 하지만 역학이라는 용어가 이번처럼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것은 처음인 듯합니다.


제가 면역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앞서 글에서도 적었듯, 감염병이 유행의 조짐을 보이면 초기 단계의 대응은 과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을 넘기면 지역사회 전파를 막기 위하여 벌이는 많은 거국적 대응들이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하여서는 아무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밤낮으로 뉴스에서 그 이야기만 하는 때가 바로 그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역사적으로 감염병에 대한 흉흉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남미의 원주민을 몰살시킨 유럽의 천연두를 위시해서 세계대전 당시 전쟁보다 더 많은 병사들을 죽였다는 발진티푸스, 수천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감염병은 소설과 영화의 좋은 소재이기도 합니다. 공포, 비극, 휴머너티를 버무리기에 그만큼 좋은 소재는 없죠. 따라서 신종 감염병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바로 그 상황으로 감정이입이 됩니다. 뭔가 좀 과하다 싶은 불편함이 느껴지더라도 쉽게 입 밖으로 내뱉기는 어렵습니다. 미리 조심하자는데 나쁠 것이 뭐가 있냐는 반박에 할 말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미리 조심하는 것이 지나치면 장기적으로 많은 부작용이 생긴다고 봅니다. 경제가 위축되고 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염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은 미지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소독제, 살균제, 항균제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기본 작동기전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든 박테리아든 곤충이든 뭐든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성분들은 "일상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득 보다 실이 훨씬 더 큽니다.  시간만 좀 걸릴 뿐 그 폐해는 100% 인간에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놈들은 제가 늘 이야기하는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하고 내 몸의 공생 미생물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따라서 감염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은 각종 만성질환 위험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런 만성질환에 걸리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감염병 유행시 가장 취약한 집단이 됩니다. 병에 걸리기도 쉽고, 예후가 좋지 않을 가능성도 더 높죠.


다들 기억하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그 본질을 캐고 들어가 보면 그 기저에는 우리 사회가 미생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과도한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생물은 미리미리 사전에 없애버리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유리할 것이라는 설익은 판단, 청결에 대한 집착, 그리고 뭐든 지속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서 팔아야만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 맞물려서 빚어낸 참사였죠.


사실 감염병은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쉬운 상대입니다. 여기서 20세기 흑사병이라 불리는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인 HIV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뤽 몽타그니에 (Luc Montagnier) 박사의 의견을 한번 경청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구자는 기존 과학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발언들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한 인터뷰에서 HIV 감염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We can be exposed to HIV many times without being chronically infected. Our immune system will get rid of the virus within a few weeks, if you have a good immune system” (유튜브 링크 겁니다). 건강한 사람들의 면역력이란 HIV조차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의미입니다.


신종감염병은 지금이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얼굴로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올 텐데요, 오대양 육대주가 하루에 연결되는 이 21세기에 신종감염병이 생기면 인간들이 무슨 수로 이를 완벽하게 피해 갈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그로 인하여 죽는 사람들,  후유증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나의 일, 나의 가족 일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한 치러야 할 어쩔 수 없는 비용 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늘어가고 이웃 나라에서는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역의 ABC는 준수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현재 상황이 전국적으로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왔던 수많은 행사들을 다 취소하고 모든 환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민 모두가 실시간으로 알아야 할 정도의 무게감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JAMA에 실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논문 제목이 “Coronavirus Infections-More than Just the Common Cold”입니다. 이 제목에서 비교대상이 감기라는 점이 중요한데요 (페스트나 천연두와 같은 감염병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았을 때 고위험군이 아닌 건강한 사람은 심한 감기 정도로 봐도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신종감염병 그 자체보다 감염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게 될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로 인한 후환이 더 공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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