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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Apr 11. 2020

그 시절 불주사가 정말 신종 코로나와 관계있을까?

예상외로 심각하게 번져나가고 있는 듯한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 상황을 두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일단은 초기 대응 실패로 인한 의료시스템 과부하와 마스크 착용과 같은 사회문화적 차이 등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시아권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높은 사망률을 볼 때, 뭔가 추가적인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며칠 전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결핵백신인 BCG 접종 여부가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뉴욕 공과대학 연구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BCG 백신을 의무 접종하지 않는 나라의 신종 코로나 사망률이 의무접종을 하는 나라보다 20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늘 그렇듯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코멘트로 기사를 마무리했지만, 논문을 한번 직접 읽어봐야 되겠다 싶더군요.



검색을 해보니 아직 정식으로 저널에 발표된 것은 아니었고 medRxiv라는 사이트에 저자들이 직접 올려놓은 논문이더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논문에 제시된 결과 자체를 못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 과연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대부분 서구권 국가들은 BCG 백신 의무접종을 애초부터 도입하지 않았거나, 이미 수십 년 전에 중지한 국가들이더군요. 애초부터 도입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가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등입니다. 아랍권 국가 중에서 높은 사망률을 보인 이란의 경우, BCG 백신 의무접종을 시행하고 있기는 하나 다른 아랍권 국가에 비하여 아주 늦은 시기에 의무접종을 도입했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현재 신종 코로나 대응 수준은 국가별로 천차만별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BCG 접종이 아니더라도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듯했고, 저널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추가 분석이 필요한 논문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추가 분석 결과가 어떻든, 일견 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는 매우 황당해 보입니다. 보통 생후 4주 이내에 맞은 BCG 백신이 현재 성인들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그것도 결핵과 전혀 다른 병원체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백신이 원래 목표로 했던 감염병뿐만 아니라 비특이적으로 다른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까지 낮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역학연구에서 관찰되고 있던 현상이었습니다. 첫 보고가 언제 되었는지를 찾아보니 무려 193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네요. 그 당시 파스퇴르 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BCG 접종을 한 영유아의 사망률이 접종하지 않는 영유아보다 월등히 낮았는데 놀랍게도 결핵보다 다른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비슷한 결과가 홍역과 천연두 백신에서도 연이어 보고되었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시행된 백신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에서까지 확인되면서 이 현상은 현재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효과가 주로 생백신에서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BCG, 홍역, 천연두 모두 대표적인 생백신이죠. 백신은 크게 생백신과 사백신으로 나눕니다. 생백신은 살아있는 병원체를 살짝 약하게 만들어서 몸 안에 집어넣는 방법이고 사백신은 죽은 균의 일부를 이용하는 방법이죠. 생백신의 경우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맞으면 오히려 백신 접종 후 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만 면역반응이 강하기 때문에 항체 형성에는 더 유리합니다. 실제로 생백신 접종은 무증상 혹은 경미한 자연감염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기전으로 생백신들이 원래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놈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의 공격까지 막을 수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생백신들이 면역세포의 훈련을 통하여 자연면역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생명체의 면역은 크게 획득면역과 자연면역으로 나눕니다 (혹은 획득면역은 후천면역으로, 자연면역은 선천면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백신 접종이나 감염을 통하여 얻게 되는 획득면역, 특히 항체는 원래 목표했던 놈만을 상대합니다. 그에 반하여 자연면역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방어기전으로, 특히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종이 등장하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 생백신의 경우 획득면역과 자연면역 둘 다를 강화시킴으로써 다양한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생아 시기에 경험하는 면역세포의 훈련은 전 생애를 걸쳐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Fetal origins of adult diseases”이라고 불리는 이론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걸리는 질병들의 보다 근본적인 시작점을 찾아가 보면 태아 시절 엄마 자궁에서 경험하는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거죠. 면역계의 경우 그 시점을 연장해야 합니다. 면역계 기초작업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노출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양수가 터지면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출생 후 아기의 면역계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환경은 엄마를 통하여 경험하게 되는 공생미생물입니다. 그리고 BCG 생백신 접종은 신생아기에 인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병원체이죠. 바로 그 시절 불주사가, 수십 년이 지난 현재의 신종 코로나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공생미생물과 생백신들만 면역세포들을 훈련시키겠습니까? 사실 모든 종류의 자연감염은 면역세포를 훈련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합니다. 위생가설 (hygiene hypothesis)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현대사회에 와서 지나친 위생관념으로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에 대한 노출이 급격히 줄어듦으로써 훨씬 더 골치 아픈 알레르기성 질환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가설이죠. 초창기에는 논란도 많았습니다만 공생 미생물의 중요성이 과학적으로 규명됨에 따라 이제 정설의 위치에 있다고 봐야죠.


현대사회에서 감염병과 관련된 가장 큰 오해는 대부분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감염병은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치명률이 높은 감염벼은 당연히 감염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치명률이 낮은 감염병은 감염이 안 되는 것이 100점이 아닙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감염이 되었으나 무증상이나 가볍게 앓고 지나가면 그것이 100점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연면역력이고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이런 사람들이 감염원으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집단면역을 올려서 전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계산이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볼 때 감염병 유행이란 새옹지마의 원리가 작동했었던 세계입니다. 이번에 어렵게 지나가면 다음번은 쉬워지고, 이번에 쉽게 지나가면 다음번은 어려워지고.. 따라서 최선은 다 하되, 너무 계산을 복잡하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신종 코로나까지.. 최근 우리 사회를 공식적으로 방문했던 신종감염병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놈들은 영리하지 못해서 재수 없게 인간들에게 발각된 종류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체의 IQ는 독성과 반비례하죠. 미생물들의 유전자 변이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 외에도 무수한 신종들이 인간들을 찾아왔다가 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독성이 엄청나게 낮아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죠. 혹시나 미래에는 이런 똑똑한 놈들까지 다 검사해서 찾아내겠다는 만용을 인간들이 부리지 않을까.. 하는, 남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걱정까지 하느라고 나날이 제 인생이 피폐해지고 있군요.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나면, “상자 밖에서 감염병 바라보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무쪼록 많이 늘어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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