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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Apr 27. 2020

집단면역(Herd Immunity)에 대한 오해와 이해

Game Changer 로서 항체검사의 중요성

최근 구글 검색을 해보니 herd immunity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오고 있군요. 외신을 인용한 국내 기사들도 많고요. 한 달 전쯤 "집단면역에 대한 마지막 글"이라고 올린 바가 있어 구경만 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관련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직업병이 발동하여 또 글을 올립니다. 집단면역이란 말만 들어도 “적자생존”, “우생학” 등의 단어가 마구 떠오르면서 분노를 참을 수 없으신 분들도 심호흡 한번 하시고 끝까지 읽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2월 말에 올린 "집단면역에 대한 첫 번째 글"부터 보시고 이 글을 읽으시면 더 좋고요. 



집단면역이란 한 인구집단에서 감염병 유행이 종식되기 위해서는 인구의 일정 % 이상이 면역을 가져야만 한다는 매우 단순한 개념입니다. 특히 전파력이 강할수록 집단면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죠. 집단면역을 올리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백신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슈는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집단면역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감염이 되었다가 회복되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부분 사람들은 신종감염병은 무조건 걸리지 않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구의 일정 %가 감염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같이 들릴 겁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같이 전파력이 강하면서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을 가진 환자가 많은 감염병의 경우,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염되었다가 회복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시행된 항체검사 결과에 의하면, 공식적으로 보고되는 환자수는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로는 이 숫자보다 최소한 10배 이상 많은 감염자가 존재할 것으로 봅니다. 


이런 특징을 가진 감염병이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유행을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모든 국가에서 면역을 가지는 사람들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물론 올라가는 속도와 양상은 국가마다 매우 다양합니다. 신종 코로나의 경우 집단면역으로 유행이 종식되려면 인구집단의 60% 이상이 면역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데요 (그보다 훨씬 낮은 %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만 일단 60%로 가정합니다), 현재 신종 코로나를 둘러싼 국가별 입장 차이는 크게 4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첫째, 적극적으로 집단면역을 60%까지 신속히 올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를 위하여 치명률이 높은 고위험군은 철저히 격리시킨 상태에서, 치명률이 거의 0에 수렴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활발한 사회적 접촉을 통하여 서로 간에 빠른 감염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매우 위험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론처럼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3월 중순 영국 총리가 이야기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한 집단면역 방법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집단면역을 60%까지 올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긴 하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올리겠다는 입장입니다. 여전히 고위험군은 격리한 상태에서 건강한 사람들 간의 사회적 접촉은 허용하되 어느 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 전략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환자 발생 속도를 조절하게 됩니다. 현재 스웨덴에서 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셋째, 집단면역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현실에서는 집단면역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경우로 대부분 국가들이 여기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유행 곡선을 평평하게 만든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현재 국가마다 유행 곡선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하여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죠. 락다운과 같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된 후의 락다운이기 때문에 집단면역은 올라가게 됩니다. 사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차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와 집단면역이 올라가는 속도 정도라고 봐야 합니다. 


넷째, 백신 없는 집단면역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경우는 감염 최소화가 목표가 되기 때문에 증상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감염자를 선제적으로 찾아서 격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해왔던 방법이죠. 유행 곡선의 관점을 볼 때, 곡선을 평평하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납작하게 0에 수렴하는 형태를 만들고자 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집단면역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신종 코로나의 특성상 아무리 촘촘한 그물을 던져도 그물을 빠져나가는 무증상자와 경한 증상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목표가 어떠하든 실제로는 아주 서서히 집단면역이 올라갑니다. 그물의 구멍 크기에 따라서 예상외로 빨리 올라갈 수도 있고요. 


현재 집단면역과 관련된 가장 큰 오해는 국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집단면역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단면역은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집중하는 완화 전략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물입니다. 유행 곡선의 정점을 낮추어 평평하게 만들겠다는 것도 완화 전략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평평한 유행 곡선"이라는 표현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집단면역"이라는 단어에만 그토록 거센 저항이 있는 것은 대부분 첫 번째 상황만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단면역의 의미를 Yes, No의 이분법으로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60%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면역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올라가면 올라간 만큼 전파 속도를 늦추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60%라는 수치 자체도 논란이 많죠. 흔히 이야기하는 60%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확률로 바이러스에 접촉되고 감염된다는 가정하에서 계산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학적 모델링이라는 것은 가정 하나만 바꿔도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죠. 이 가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집단면역의 기준점이 60%가 아니라 20~30%까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 외신을 보니 락다운과 같은 강력한 사회 두기를 선택한 세 번째 나라들이 고민이 많은 듯합니다. 초기대응에 실패하고 바로 완화 전략으로 넘어가면서, 환자수 급증을 막기 위하여 락다운을 선택했죠. 그런데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로 인한 피해가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락다운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즉, 스웨덴과 유사한 두 번째 전략으로 가자는 요구입니다.  락다운은 장기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원하건 원하지 않건 어느 시점에서는 두 번째 전략으로 옮겨가게 될 겁니다. 그러나 락다운을 풀면 당장 환자수와 사망자수의 증가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현대사회 속성상 대중들은 숫자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동요하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로 약간의 훈수만 두어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 발생 양상에 따라서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오락가락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한편 네 번째 전략은 현재 방역 모범국으로 칭찬받는 나라들이 선택한 방법이죠. 신속한 초기대응으로 환자수와 사망자수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나라들입니다. 이런 기조를 유지하다가 신뢰할만한 백신과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조속히 개발된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유행의 종식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지지부진하고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또 다른 딜레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집단면역 형성 자체를 막는 전략을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간의 접촉이 다시 시작되면 이차 유행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지금까지 감염자 한 명, 한 명에 의미를 두면서 방역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사망자수가 아니라, 환자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즉,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대가 이미 팬데믹 선언이 된,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자가 많으나 전파력이 높은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또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집단면역은 유행종식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나라와 같이 감염 그 자체를 원천봉쇄하고자 하는 노력은 비현실적인 목표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신종 코로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감염병은 방역의 관점이 아니라 공존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부터 첫 번째 출구전략"이라는 글에서 적었듯이 집단면역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IgG 항체검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감염 후 생성되는 항체 그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더군요. 예를 들어, 항체가 생겨도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항체 양성이라고 면역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항체가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등등.. 아직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연구자적 마인드라고 봐야 합니다. 지구 탄생이래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생명체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합리적 추론들도 실증적 증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신종 코로나에 대한 특효약은 없지만 감염자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회복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보통은 항체를 남깁니다. 하지만 항체가 생성되었다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최소한 감염된 적이 없었던 사람보다 저항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염 그 자체가 특이면역뿐만 아니라 자연 면역력까지 올려주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 시절 불주사가 정말 신종 코로나와 관계있을까?”라는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염병 유행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미지의 신종은 가능한 한 심각한 질병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되면 될수록 안전합니다. 심각하지 않은 병으로 예상했는데 심각한 병으로 밝혀질 때 발생하는 피해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과대평가가 미치는 해악이 과소평가보다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신종감염병이란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변수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행 과정 중에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며, 이때 항체검사는 그 어떤 정보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제 정부에서 IgG 항체검사를 계획하고 있으나, 신뢰성 있는 검사를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며 항체검사 결과로 방역대책의 수위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발표를 했더군요. 그 이유로 항체검사의 정확도와 표본 조사의 타당도 등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연구자적 마인드일 뿐입니다. 연구자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항체검사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점들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IgG 항체검사 결과는 충분히 "Game Changer"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모르고 지나간 감염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유행에 대처하는 전략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연구자적 관점이 아니라 해결사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며, 타이밍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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