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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May 08. 2019

이 시대 케미포비아 혹은 케모포비아들을 위한 조언

현실

 

합성화학물질이 이슈가 되면 대중들은 유해하다고 세상에 알려진 몇몇 종류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착각입니다. 20세기 이후 인간들이 실험실에서 개발한 합성화학물질의 종류는 무려 10만여종이 넘고, 여기에 매년 수천 종이 새롭게 더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를 이끄는 성장동력이기도 하고, 이러한 합성화학물질 덕분에 21세기 우리의 삶은 더 할 나위 없이 편리해지기도 했죠.


현 시대 연구자들이 합성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하여 접근하는 방식은 10차 방정식을 1차 방정식으로 만들어 풀려고 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합성화학물질에 대한 현재 패러다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철저히 개별 화학물질 중심이죠. 어디에서 검출된 1급 발암물질이 어떠니, 어디에서 검출된 환경호르몬이니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개별 화학물질 중심의 접근법은 당연히 개별 먹거리, 개별 생활용품의 접근법으로 이어집니다. 눈만 뜨면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먹거리와 생활용품들이 하나씩 돌아가면서 이슈가 되는 이유입니다. 도대체 뭘 먹고 뭘 쓰고 살아야 하느냐고 한탄하는 케미포비아가 양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착각

 

합성화학물질이 아주 높은 농도에서 생명체를 병들게 하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따라서 과학자들은 합성화학물질의 장점은 취하되, 단점은 피하는 방법으로 위해성 평가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얼마 정도까지는 노출되어도 안전하다는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죠. 그리고 그 기기묘묘한 숫자에 “허용기준” 혹은 “안전기준”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름은 정말 중요합니다. “허용”이나 “안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대중들은 모든 걱정을 잊습니다.  “허용기준”과 “안전기준”이 그 단어 자체로 위험한 이유는 그 기준만 충족해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이해

 

아주 오랫동안 합성화학물질들의 문제는 높은 농도에서 벌이는 일들이 전부라고 믿어 왔습니다. 이를 두고 보통 독성이라 부르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합성화학물질들이 아주 낮은 농도에서 높은 농도와는 전혀 다른 기전으로 생명체에 이런저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연구자들은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가 아는 지식이란 단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뿐입니다.

 

개별 화학물질들이 높은 농도에서 보이는 독성은 위해성 평가라는 그럴듯한 방법을 통하여 관리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낮은 농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두고 개별 화학물질이 이러니 저러니 따지는 것은 실험실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 영역은 수천, 수만 가지 합성화학물질들이 혼재하는 영역이고 이들 간에는 매우 복잡한,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유들은 꽤나 많지만 그중 하나가 비선형성입니다. 비선형성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농도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선형성을 이해하기 힘든가요? 화학물질이 높은 농도에서 나타내는 독성은 반전의 기회가 없습니다. 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당연히 더 해롭습니다. 그러나 낮은 농도에서 벌이는 사건들은 우리 몸이 이를 적절한 시점에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생명체는 즉각적으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자구책 마련에 들어갑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하여 내부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노력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이 노력의 결과가 화학물질의 경우 비선형성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현상을 혹자는 “Hormesis (호메시스 혹은 호르메시스)"라고 불렀습니다.

 

선택 


최근 들어 아주 낮은 농도를 가진 합성화학물질들이 많은 질병들의 감춰진 원인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의 존재가 단지 정부가 무능해서 그리고 기업이 탐욕스러워서 발생한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런 시대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피해자이자 모든 사람이 가해자인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개별 합성화학물질이 아주 높은 독성 영역에서 벌이는 문제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와 기업의 몫입니다. 제대로 일을 할 줄 아는 성실한 정부가, 이윤 추구만이 기업의 존재 목적이 아님을 아는 정직한 기업이 존재할 때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같은 비극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유해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현장의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것도 법, 규정, 그리고 엄정한 관리를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의미 없는 것이 시도 때도 없이 언론에 등장하는 발암물질, 중금속,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었다는 특정 먹거리나 특정 생활용품 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피해야 할 것이 자꾸 늘어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오면 의미 없는 것에 더하여 심각한 부작용이 생깁니다. 이런 삶은 종국에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란 자고로 생명체가 화학물질이 내 몸에 끼친 영향을 바로잡기 위한 자구책 마련 노력을 방해하는데 일등 공신입니다. 병적인 케미포비아가 되면, 피하면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이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미 환자가 된 경우에는, "운이 좋다면" 피하며 살기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내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바로 내 몸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온갖 경로를 통하여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을 몸 밖으로 빨리 내 보내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이들이 세포 수준에서 벌이는 일들을 빨리 인지하여 우리 인체의 항상성 유지 기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바로 우리가 움직이고 우리가 먹는 것,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핵심입니다. 살을 빼기 위하여, 근육을 만들기 위하여, 영양소를 챙기는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오염되어 버린 이 21세기에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먹을 것인가? 는 일종의 생존 방법입니다. 이 생존 방법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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