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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Oct 04. 2020

왜 코로나는 아프리카를 초토화시키지 않을까?

유행 초기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가 아프리카 대륙에 상륙하는 순간, 바로 시한폭탄이 될 거라고 예상하였습니다. 열악한 의료시스템, 만성적인 영양부족, 심각한 거주환경, 오랜 내전, 신뢰성 있는 정부의 부재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반년을 넘긴 지금 시점, 아프리카의 상황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권 국가들보다 좋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아프리카의 코로나 사망률이 최첨단 의학의 본산지인 미국이나 유럽보다 낮다면 납득이 가시나요? 오로지 아프리카에서 나온 통계이므로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상당기간 아프리카의 자료는 전혀 못 믿을 정보로 생각하여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더 이상 통계자료의 부실함만으로는 아프리카의 낮은 코로나 사망률을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에서 코로나는 늘 곁에 있어 왔던 수많은 감염병에 추가된 또 하나의 감염병 정도에 불과한 듯해 보입니다.


 

제가 동아시아권과 서구권 국가들의 코로나 사망률을 비교한 글에서 한 국가에서 신종 코로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국가가 가진 방역대책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저항력이라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만약 방역대책이 핵심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아프리카는 시신들이 길마다 쌓여있어야 맞겠죠.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진 저항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가장 흔하게는 젊은 인구가 많고 비만과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자가 적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프리카 역시, 앞서 여러 번 설명드린 바 있는 교차면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즉, 과거 다양한 감염의 경험이 아프리카인들에게 신종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가끔 강의를 할 때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아느냐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수많은 답변들이 나오죠. 운동, 스트레스 관리, 햇빛, 수면, 각종 식품들 등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답변들입니다. 이러한 건강한 생활습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우리의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니라 감염 그 자체를 많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늘 슈퍼 AI라고 표현하는 유기체의 면역시스템은 끊임없는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감염을 통한 실전 훈련 없이는 제아무리 슈퍼 AI라도 작동법을 망각해버립니다. 제가 계속 감염병은 안 걸리는 것이 100점이 아니라 무증상으로 지나가는 것이 100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앞서 나온 건강한 생활습관이란 슈퍼 AI가 훈련의 기회를 가질 때 가능한 한 무증상으로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들이고요.  


현재 우리 주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등이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 내에서 이들을 피하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면서 살 필요가 없는 건강한 면역 시스템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그 사회도 점점 더 건강한 사회가 되어가는 겁니다. 그 사람들 덕분으로 맞서 대처할 수 없는 약한 사람들까지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죠. 이것이 인류를 지금까지 지켜온, 하지만 지금은 금기어가 되어 버린 집단면역의 핵심 개념이며 이들의 진가는 지금과 같이 신종감염병이 등장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반면 현대사회의 방역대책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훈련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합니다. 또한 전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대중들에게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일들은 대부분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서서히 병들게 만드는 일들입니다. 비대면 사회, 소독제의 일상적 사용, 장기간 마스크 착용과 같은 일들이죠. 그 와중에 대중들은 자신의 몸에 기본으로 장착된 슈퍼 AI급 면역시스템의 작동법은 까맣게 잊고,  19세기 감염병 패러다임의 부산물인 방역과 언제 나올지 모르는 백신만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버렸죠.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을 했습니다. 감염병을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정교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의 감염병 패러다임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도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거대 조직이 저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신종이 찾아올 때마다 이번처럼 대응하다가는, 우리 사회는 신종감염병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방역대책이 초래한 사회적 혼란으로 인하여 자멸하고 말 겁니다. 


한편 지난주 시사인에 실린 코로나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이신 오명돈 교수님의 인터뷰 "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에 대한 방역당국의 공식적인 답변이 있었군요. 예상대로 현재의 방역대책을 여전히 고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이미  한계상황에 와 있는 사회와 모순투성이 방역대책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국민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방역당국에서는 오로지 서구권의 상황만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해 왔습니다. 대중들도 지금처럼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도 3,4월의 이탈리아, 뉴욕 꼴 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아왔죠. 하지만 더 이상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면서 현재의 방역정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 무시해왔던 다른 국가들의 경험에 눈을 돌려 보면 미처 몰랐던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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