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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Sep 20. 2020

가장 강력한 방역대책은 “교차면역"입니다

드디어 British Medical Journal (BMJ)에서 교차면역 (cross-immunity)을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군요. 논문 제목이 “Covid-19: Do many people have pre-existing immunity?” 입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코로나 교차면역에 관한 연구결과들과 함께, 교차면역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BMJ는 1840년에 창간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의학저널 중 하나입니다. 특히 진료 현장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에 대하여 시기적절하게 깊이 있는 접근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BMJ논문의 최종 결론은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논문 덕분으로 교차면역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코로나 사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의사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교차면역을 코로나에 국한해서 본다면, 과거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 경험이 있으면 이번 신종 코로나에도 저항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염병은 무조건 전파를 방지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전제하는 현대사회 방역대책의 근본부터 뒤흔드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미래에 코로나 19보다 더 치명률이 높은 코로나 25, 코로나 30과 같은 신종이 등장하면 어떨까요? 이번에 코로나 19를 경험하고 지나간 사람들이 많은 국가는 교차면역 덕분으로 가장 쉽게 지나가고, 경험한 사람이 작은 국가는 가장 취약한 국가가 되는 겁니다. 제가 계속 방역은 과소도 과잉도 아닌 "적정 방역"이 중요하며, 단순히 감염 최소화를 지향점으로 하는 "방역 1등 국가"라는 타이틀은 독이 든 성배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교차면역과 관련된 논문들은 시시한 저널이 아니라 소위 Cell, Nature, Science와 같은 자연과학분야 탑 저널에 발표되고 있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교차면역은 rocket science가 아니라 common sense science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BMJ논문에서는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이미 교차면역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잊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만 교차면역 개념 그 자체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앞서 올린 글들 중  " 일본은 신종 코로나 사망이 폭발하지 않을까?"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차면역은 이 블로그의 주제인 호메시스의 핵심원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도 하죠.


교차면역의 존재는 항체 존재 유무로만 면역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체가 아닌 T세포 면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항체가 사라진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몇 달 내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항체와 달리 T세포 면역은 장기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T세포 면역은 감염 자체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이 되더라도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므로 지금과 같이 광범위한 선제 검사로 무증상 감염자를 찾아내고 격리하는 방역대책은 재고되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교차면역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신종 코로나 정도의 감염병을 피하기 위하여 인류가 지금처럼 대응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골드버그 장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가 고안한 기계장치들인데 쉽고 단순한 작업을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이 장치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 등 긁기 기계'라는 것이 있는데 총 15개 부품과 9개 단계로 이루어져 있죠. 그 외에도 ‘밥 떠 먹여주는 장치’, ‘밥 먹을 때 입가에 묻은 것을 닦아주는 자동 냅킨 기계’, ' 옷깃에 넣어둔 편지를 우편함에 넣는 장치'등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골드버그는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들을 풍자하기 위해 이런 장치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현대사회의 방역대책을 보면 골드버그 장치가 생각나곤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방역대책은 더욱 복잡하고 거창하게 만든 골드버그 장치입니다.  인간들을 등 긁을 줄도, 밥 퍼 먹을 줄도, 입가를 닦을 줄도 모르는 깡통 취급을 하고 만든 것이 골드버그 장치이듯, 지구 탄생이래 슈퍼 AI급으로 갈고닦아 온 유기체의 면역시스템을 모조리 통조림 깡통으로 간주하고 만든 것이 현대사회의 방역대책이죠. 감염병에 대한 현재의 접근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없다면 정부는 골드버그 장치를 계속 화려하게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할 겁니다. 겉보기에는 참으로 그럴 듯 해 보이거든요.


한편 최근 스웨덴의 현재 상황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하지만 제가 7월 말에 올린 “지금까지 버텨준 스웨덴이 고맙다”라는 글에 달렸던 댓글의 주장들이 여전히 끝없이 반복되고 있군요. 전문가, 일반 대중할 것 없이 모두  <스웨덴 방역정책 = 대량 사망>, <우리나라 인구수 x 스웨덴 사망률=3만 명 사망>, <집단면역 = 항체 양성률 60~70%>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최근 발표한 항체 양성률 0.07%에 힘입어 정밀 역학조사의 고삐를 더 죄고 있는 듯합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닐 퍼거슨 교수는 위 고정관념을 세상에 전파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 사람은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가정하에 진행한 수학적 모델링 결과로 전 세계를 락다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죠. 유행 초기 닐 퍼거슨 교수가 락다운을 하지 않으면 스웨덴의 사망자 수가 얼마나 될 거라고 예측했는지 혹시 아시나요? 현재 사망자수보다 약 8만 명이 더 많은 8만 5천 명이었습니다. 만약 스웨덴이 락다운을 해서 지금과 비슷한 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더라면 아마도 모델링 전문가들은 이렇게 또 다시 세상을 기만했을 겁니다. 락다운 덕분에 스웨덴은 8만 명의 사망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BMJ 논문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차면역이 현실에서 가지는 의미는 지금까지 발표된 그 어떤 연구 결과보다 중요합니다. 부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의료인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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