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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May 30. 2020

왜 일본은 신종 코로나 사망이 폭발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와 일본은 신종 코로나에 대한 방역대책의 양극단에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행 초기부터 광범위한 선제 검사를 기조로 접촉자를 신속히 추적하고 격리하는 방역대책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무증상자에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PCR검사를 해주지 않았으며, 증상이 있는 환자들조차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PCR검사를 제한했죠. 신종 코로나와 같이 무증상, 경한 증상 비중이 높은 감염병은 그 어떤 방역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단 검사를 제한하면 그 자체로 바이러스 지역사회 전파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 일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곧 이탈리아나 미국과 같이 사망자수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해왔습니다. 그런데 6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신종 코로나 사망률은 매우 낮습니다. 사망률이 10만 명당 0.7명 정도로 10만 명당 50명을 훌쩍 넘는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나라와 비할 바가 아닙니다. 단지 검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총 사망자수 조차 예년 비슷한 시기의 총 사망자수보다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나온 기사에 의하면 금년 1~3월까지 사망자수가 지난 5년간 동일한 시기의 평균 사망자수보다 오히려 0.7% 적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장 흔한 반응은 일본이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 지역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 같이 의료시스템이 낙후된 나라도 사망률이 매우 낮습니다.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단지 검사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만 현지 의견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있는 지역은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이고 거의 모든 주민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 삽니다. 신종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고 초기 몇 달 동안 여전히 수십만 명의 관광객, 특히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방문했지만 지금까지 특별히 사망자가 폭증하는 징후가 없었다고 전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정말 이 모든 것은 검사를 하지 않고 통계를 조작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뿐일까요? 이쯤에서 최근 Cell에 발표된 논문 한편을 소개드릴까 합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라호야 알레르기 면역 연구소와 캘리포니아 대학 팀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입니다. 이번 글과 관련된 결론만 요약하자면 예전에 다른 종류의 코로나 바이러스(감기, 사스, 메르스..)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이번 신종 코로나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특정 감염병에 대한 면역은 특정 항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A’에 대한 특정 항체는 A’이라는 감염병에 걸리거나 백신 접종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특정 항체가 있어야만 A’에 대한 면역을 가지는 것아닙니다. A’와 비슷한 A’’ 혹은 A’’’에 감염된 적이 있어도, 항체가 아닌 T-cell 세포성 면역을 통하여 A’에 면역을 가질 수 있습니다. Cross-immunity라고 부르는 개념입니다. 사실 이 개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제너가 우두에 감염된 소젖 짜는 여자들의 진물을 천연두 예방을 위하여 이용하던 시기부터 존재했던 개념이죠. 천연두와 우두의 관계가 A’과 A’’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스, 메르스 등 최근 등장한 코로나 관련 신종 감염병은 모두 아시아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이러스 변이 속도를 생각해보면 인간들의 레이다망에 걸리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경미한 코로나 변종들도 계속 출몰했었을 것으로 봅니다. 즉, cross-immunity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시아권에 사는 사람들은 과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접촉 경험들로 인하여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이번 신종 코로나에 더 큰 저항력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cross-immunity의 개념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A’과 전혀 다른 B나 C에 감염된 적이 있더라도 A’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시절 불주사가 정말 신종 코로나와 관계있을까"라는 글에서 BCG 생백신이 면역시스템을 훈련시킴으로써 결핵균과 전혀 관계없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이 역시 논문으로 확인하고 싶으신 분을 위하여 최근 Nature Reviews Immunology에 발표된 논문을 링크합니다. BCG 생백신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모든 생백신 혹은 자연감염은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이번의 뜨거운 경험 덕분에 향후 찾아올 신종감염병에 대하여 인류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가 전 지구적인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 노말을 강조하면서 마스크와 함께 하는 일상, 재택근무, 비대면 서비스 등을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더욱더 개인을 신속히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올인할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빈약한 지성으로는 인류가 이 격동의 21세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인류가 진정으로 신종감염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고자 원한다면 먼저 상자 밖으로 나와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염병은 무조건 피하고 박멸하는 것만이 살길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장기적으로 폐해가 더 큽니다. 제가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감염병은 안 걸리는 것이 100점이 아니라 무증상이나 경한 증상으로 지나가는 것이 100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적인 감염 최소화를 지향점으로 하는 현재 우리나라 방역대책은 방법론적으로는 최첨단의 기술을 접목했을지언정 그 기본 관점은 19세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찾아올 더 치명률이 높은 신종감염병에 국민들을 취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각종 만성병의 위험도 높이게 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나라가 유럽권 국가나 미국의 상황을 보면서 신종 코로나에 과도한 공포심을 가지고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 각국의 상황에 대한 주도면밀하고 냉정한 분석을 통하여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방역대책을 시급히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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