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고 이후 미국에서는 Blacklivesmatter 운동이 급속도로 번져갔습니다. 각 도시에서 연일 수만 명의 대규모 시위와 함께, 폭동과 약탈행위가 만연했죠. 많은 사람들이 이 대규모 시위로 인하여 미국 코로나 사태가 설상가상의 국면에 처했다고 예상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시위 때문에 코로나 환자가 급증했다고 볼만한 징후가 보이지 않아 다들 의아해하는 분위기입니다. 공식적인 입장은 시위와 락다운 해제 시점이 겹쳐서 정확한 분석이 힘드니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만 건강한 사람들이 야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라면 밀집 상태에서 시위를 하더라도 전파력이 낮은 것으로 일단 해석하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야외 운동시설은 적극 개방하는 쪽으로 방역대책에 반영하자는 주장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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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와 관련된 대규모 증가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미국은 하루 확진자수가 수만 명에 이르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각주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됩니다. 그동안 확진자수가 많지 않았던 다른 주에서는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는 반면, 뉴욕주와 같은 유행의 진앙지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오히려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뉴욕주의 경우, 4월 중순부터 감소 추세를 보였는데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감소를 보여 현재 그래프상으로 보면 거의 정규분포 곡선의 맨 끝 지점에 와있는 듯 보입니다.
그 덕분에 지난 금요일,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3달 넘게 이어졌던 코로나 일일 브리핑을 끝내고 필요할 때만 하는 걸로 방침을 바꾸었죠. 쿠오모 지사는 이러한 결과가 뉴욕주의 방역대책이 다른 주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방역대책 때문이라기보다는 바이러스가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기 힘든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즉, 뉴욕주는 현재 일정 수준 집단면역이 형성된 상황일 가능성이 큽니다.
뉴욕주의 경우 4월에 시행한 항체검사에서 항체를 가진 사람이 약 14%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 비율이 조금 더 늘어나 있겠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집단면역의 기준치인 60~70%에는 한참 못 미칠 겁니다. 그런 조건에서 계속 이어진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유행이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은 집단면역이 60~70%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합니다.
현재 집단면역과 관련된 가장 큰 오해는 집단면역이 효과가 있으려면 최소한 인구의 60~70% 이상이 감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의 숫자"를 세상에 널리 각인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닐 퍼거슨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교수입니다. 퍼거슨 교수는 이 바이러스는 인류가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는 신종이므로 면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는 가정하에서 모든 모델링을 진행했었습니다. 그 결과 각종 암울한 시나리오가 펼쳐졌고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아넣었죠.
그러나 최근 닐 퍼거슨 교수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종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저항력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매우 다를 것으로 보는데, 이 요인이 모델에서 고려되면 집단면역의 기준치가 20~30%, 아니 10%까지도 떨어집니다.
이 저항력에 관여하는 요인을 두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칼 프리스톤 교수는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에 빗대어 면역학적 암흑물질 (immunological dark matter)이라고 명명했더군요. 다양한 요인들이 면역학적 암흑물질의 후보로 등장했습니다만 현재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암흑물질은 cross-immunity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앞서 올린 “일본은 왜 신종 코로나 사망이 폭발하지 않을까”라는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뉴욕의 경우 이미 매우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후의 결과이므로 방역대책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뉴욕의 사례가 집단면역이 훨씬 낮은 수준에서 달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면 집단면역에 대한 현재까지의 모든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항체검사로 확인 가능한 저항력은 전체 면역시스템의 단지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요.
얼마 전부터 많은 유럽권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꽤 많은 수의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락다운 해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결국 스웨덴과 동일한 방역정책입니다. 스웨덴은 처음부터 느슨한 락다운을 선택했고 다른 나라는 닐 퍼거슨 교수덕분에 상대적으로 강한 락다운을 거쳐갔다는 차이일 뿐이죠. 모든 유럽권 국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료시스템의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환자 발생을 관리한다는 것이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 집단면역은 서서히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집단면역과 관련하여 특정 국가만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다른 북유럽 국가에 비하여 스웨덴의 사망률이 높다는 그 자체로 집단면역의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제가 앞서 글에서 우리나라의 방역 목표는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무증상자까지 미리 찾아서 격리하겠다는 것이므로, 집단면역을 “적극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괴이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향점은 단지 지향점일 뿐, 현실에서는 우리나라의 집단면역도 서서히 올라가고 있을 겁니다. 방역당국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철저한 역학 조사를 통해 하나하나 감염의 연결고리를 추적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저는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바이러스가 가진 특성상 구멍 뚫린 그물을 빠져나간 수많은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 감염자가 존재하고, 이들이 소위 깜깜이 환자를 만들어내고 있죠.
현재 우리나라는 심각한 딜레마에 처해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환자수가 다시 증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재의 방역정책이 구멍 뚫린 그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역학조사와 동선추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확진자가 존재하고 그 보다 훨씬 많은 무증상 감염자가 존재하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감염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는 일 따위는 이미 한참 전에 그만두어야 했었지만, 방역 모범국이라는 닉네임 때문에 그만 시기를 놓쳐 버렸다고 봅니다.
제가 2월 말에 쓴 집단면역에 대한 첫 번째 글에서 신종 코로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감염병은 싫든 좋든 집단면역이 서서히 올라가서 종식의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기적같이 백신이 등장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신종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를 상대로 안전하면서도 유효성 있는 백신을 조속히 개발한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집단면역을 적극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노력은, 집단면역을 단시간에 적극적으로 올리고자 하는 노력만큼이나 현명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허망합니다만..). 모름지기 세상만사는 과유불급, 중용의 도가 최선이며, 바이러스와 인간과의 싸움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서 전파력이 더 높아진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더 공포에 사로잡힌 듯합니다만 사실은 오히려 환영할 일입니다. 앞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독성을 낮추어가면서 전파력을 높이는 것은 모든 병원체의 진화 원리입니다. 즉, 바이러스 스스로 인간에게 적응해가면서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구 탄생 이래부터 수도 없이 반복된 일이었고 지구 멸망하는 그 날까지 계속됩니다.
이러한 바이러스 실시간 진화의 한가운데 현재 우리가 서 있습니다. 그 와중에 cross-immunity가 높은 나라는 아주 낮은 집단면역에서도 유행은 종식될 것이고 cross-immunity가 낮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환자가 발생한 후라야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이 cross-immunity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듯, 현재의 경험은 또 미래의 다른 신종감염병이 찾아왔을 때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로 판단해볼 때 우리나라는 cross-immunity가 높은 나라입니다. Cross-immunity가 낮은 나라의 상황을 가져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으면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와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로 하여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방역정책으로 선회해야 합니다. 구멍 뚫린 그물에 불운하게 걸린 확진자 한 명 뜬다고 직장과 학교를 폐쇄하고 전수 조사하는 현재의 방역정책을 고수하는 한, 우리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요원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방향 바꾸기가 힘들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