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유럽권 국가들의 항체검사 결과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더군요. 결론은 항체 양성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집단면역은 아직 갈길이 한참 멀다는 겁니다. 특히 스웨덴에 대한 기사들은 한결같습니다. “집단면역 참패”, “집단면역 택한 죄”, “참혹한 성적표".. 뭐 이런 제목들이 줄을 잇고 있네요. 영국 가디언지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지난 4월 스톡홀름에서 시행한 항체검사 양성률이 7.3%로, 소위 집단면역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60%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참담한 실패라는 거죠.
하지만 60%에 도달하고 안 하고를 따지면서 방역대책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집단면역의 오해와 이해”라는 글에서도 적었듯, 집단면역은 완화 전략의 필연적 결과물로 그 의미를 Yes, No의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60% 한참 아래라 하더라도, 면역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1%라도 높으면 높은 만큼 의미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 간의 접촉이 허용되는 한 항체 양성률은 꾸준히 올라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선택한 방역대책이 "장기간" 유지 가능한 방법인가? 하는 점입니다. 신종 코로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감염병은 결국 모든 국가가 고위험군은 보호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행 초기 노인요양시설 보호에 실패했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야 많겠지만, 향후 스웨덴의 방역대책은 재조명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항체양성률 60%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확률로 바이러스에 접촉되고 감염된다는 비현실적인 가정하에서 계산된 것입니다. 이 조건이 모델에서 어떻게 고려되느냐에 따라서 집단면역의 기준점이 60%가 아니라 20~30%까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영국 리버풀대학 연구팀이 MedRxiv에 올려놓은 논문을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항체검사로 확인 가능한 면역은 생명체가 가진 전체 면역 시스템의 일부일 뿐입니다. 항체없이도 저항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 모든 면역시스템의 합이 집단면역에 기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른 국가의 항체검사 결과를 보고 진정으로 던져봐야 할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유행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행하는 항체검사는 단순히 집단면역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시점의 항체검사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모르고 지나간 감염자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감염병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경미한 병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현재 하고 있는 방역대책이 적절한 수준인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심이 합리적인가? 를 판단하는 핵심 정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개인을 추적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항체검사 결과를 모니터링해봐야 합니다. 모르고 지나간 감염자의 규모에 따라서 개인을 추적하는 방역대책의 실효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유행이 훨씬 뒤에 시작된 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한참 전부터 나오고 있는 항체검사 결과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한데요, 어제 방역당국에서 “곧” 항체검사를 시작할 거라는 발표를 "또" 하더군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검사를 해도 항체 양성률이 낮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아직 집단면역을 형성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기존의 방역대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방역당국에서는 현시점의 항체검사가 왜 중요한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단면역 형성 수준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항체 양성률이 단 1%만 나와도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을 추적하는 현재의 방역대책을 시급히 재고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구 오천만 명 중 1% 항체 양성률이라면 50만 명이 이미 감염되었다가 나았다는 의미입니다 (항체검사의 민감도 및 특이도와 관련된 논란은 일단 생략합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신종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가 1만 명 조금 넘습니다. 즉 49만 명은 무증상이나 경한 증상으로 모르고 지나갔다는 거죠. 제가 유행 초기부터 “구멍 뚫린 그물”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 정도로 큰 구멍이 뚫린 그물로 하는 정밀 역학조사는 겉보기에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허구입니다.
제가 개학과 관련된 정밀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련의 글들에서 적었듯, 정밀 역학조사는 전파 방지라는 공공의 이익이 개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그 사회적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종 코로나와 같이 무증상자가 많은 감염병의 경우에는 유행 초기에만 국한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감염원을 찾을 수 없는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면 개인위생과 적절한 거리 두기 등으로 전파방지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구멍 뚫린 그물로 하는 정밀 역학조사는 특정 개인과 특정 집단이 사회적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위험한 방역대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는 각 지자체마다 이 구멍 뚫린 그물로 하는 정밀 역학조사를 누가 누가 더 신속하게, 더 광범위하게, 더 세밀하게 하는가?로 무한경쟁을 하는 듯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지자체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장이 되어 버렸군요.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긴급 항체검사를 해서 모르고 지나간 감염자의 규모를 신속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근거하여 현재의 방역대책은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정밀 역학조사의 기술들은 서랍 속에 잘 보관해 놓았다가, 미래에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이 찾아오면 그때 다시 꺼내서 전광석화같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7월 29일에 올린 "지금까지 버텨준 스웨덴이 고맙다"와 8월 20일에 올린 "집단면역 스웨덴, 사망자 150년 만에 최대??"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