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등교가 시작된 후 정밀 역학조사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 심히 걱정되어 글을 하나 더 올립니다.
유행 초기 개인을 대상으로 신속하게 추적하고 검사하고 격리하는 우리나라 방역대책은 세계 각국의 호평을 받아 왔습니다. 덕분에 방역 모범국으로 손꼽히기도 하고, 우리나라 방역대책이 국제표준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최신 IT기술과 연계한 현재의 정밀 역학조사는 매우 세련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감염병 유행 초기에 전파를 늦추거나 유행을 조기 종식시키는 목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준비된 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의 정밀 역학조사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유행의 기간이 길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젠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겠지만, 신종 코로나는 조기에 유행을 종식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병이 아닙니다. 무증상자와 경한 증상자가 많은 감염병이 감염원을 찾을 수 없는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면 개인을 추적하는 정밀 역학조사는 재고되어야 합니다. "구멍 뚫린 그물"에 걸린 사람들만이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대규모 PCR 검사를 하고 신속하게 동선 파악하는 것을 보면 일견 아주 효율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착시현상입니다. 전파 속도를 "일시적으로" 늦추는 데 다소 도움은 되겠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큰 방역대책입니다.
특히 앞서 글에서 개학 후 학교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지금과 같은 정밀 역학조사로 접근하면 그 사회적 파장은 상상불가일 거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글의 전문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한 부분만 발췌합니다.
“.. 개학 후 한 아이가 확진자로 진단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한번 상상해봅시다. 즉각 역학조사반이 투입됩니다. 그 아이의 동선 조사, 감염원 추적, 접촉자 조사 등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그 아이가 머물렀던 모든 곳은 폐쇄하고 방역소독을 할 겁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아이의 신상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당연하게 알려질 것이고 최소한 같은 반 학생들은 자가격리 대상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학부모들은 이에 격렬하게 항의를 하게 될 것이고 책임소재 공방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 아이도 누군가로부터 바이러스가 감염된 피해자일 뿐이지만 더욱 심각한 2차, 3차 사회적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 아이가 내 아이라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행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정밀 역학조사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 유명한 신천지 사태를 촉발시킨 31번 환자를 감염시킨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고 이번 이태원 발 66번 환자를 감염시킨 사람도 누군지 모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밀 역학조사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선진적인 방역대책으로, 모든 감염자들을 선제적으로 찾아내서 격리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죠. 개학 후에도 당연히 이 방법으로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된다고 믿고 있고요.
항체검사 결과는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환상을 통렬하게 깨트릴 겁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시행된 항체검사 결과에 의하면 공식적인 확진자 숫자보다 최소 10배 이상의 감염자가 존재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를까요? 다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구시민 표본에서 10% 항체 양성률이 나왔다고 칩시다. 인구수가 250만 명이므로 25만 명의 감염자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될 겁니다. 위양성자와 위음성자도 상당수 있을 것이므로 대충 퉁쳐서 20만 명정도로 가정해봅시다. 현재까지 대구시 확진자수가 만 명이 되지 않으므로 19만 명은 그물을 빠져나간 감염자였음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정밀 역학조사라는 그물에 뚫린 구멍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정밀 역학조사는 큰 의미가 없었다고 봐야 하지만, 겉보기에 세련되면서 완벽한 방역대책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냥 관성에 의하여 시행되고 있었다고 봅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항체검사를 할 계획이긴 하지만, 그 결과로 방역대책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 번 표명한 바 있습니다. 그물에 뚫린 구멍의 크기가 어떻든지 간에 지금의 방역대책이 최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국민건강영양조사라는 잘 설계된 표본조사와 연계하여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항체검사를 한다는 입장입니다. PCR 검사를 하는 노력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면 이미 항체검사 결과가 나오고도 남았겠지만, 끝까지 정밀 역학조사로 밀고 나갈 듯 합니다.
저는 현 정부의 선의를 믿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의 빛이 바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하고 싶지 않은 방역당국의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 전환을 해야 합니다. 정밀 역학조사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태원 클럽 발 전파는 사람들이 끝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향후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봅니다. 곧 이 구멍 뚫린 그물이 학교를 찾아옵니다. 개학 후 정밀 역학조사는 더욱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됩니다.
펜데믹 선언이 되고 2달 이상이 지났습니다. 이런 감염병을 대상으로 아직까지 정밀 역학조사로 대응한다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습니다만 전문가 집단에서 조차 그 누구 하나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긴급 항체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기반하여 정밀 역학조사의 무의미함과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완화 전략의 기본 접근법인 환자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집중하면서 사회를 서서히 정상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환자 발생 추이를 주도면밀히 모니터링해가면서 시기적절하게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신종 코로나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경미한 질병이라고 보기 때문에 개학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역학자입니다. 하지만 방역당국이 정밀 역학조사라는 패를 던지지 않고 계속 움켜쥐고 있는 한, 개학은 하면 안 됩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신천지나 이태원 클럽과는 달리, 바로 내 아이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