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덕희 Sep 08. 2020

동아시아의 낮은 코로나 사망률, 방역대책 덕분??

왜 "방역 1등 국가"라는 타이틀은 독이 든 성배일까? 

방역당국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구멍 뚫린 그물에 걸린 확진자 한 명 뜨면 직장과 학교 폐쇄하고 동선 추적해서 1차 전파, 2차 전파 헤아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군요. 유행 초기에나 의미 있는 이런 방역대책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는 사회를 지켜보는 것이 이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군요. 


단순히 경제가 망가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통 국난은 국민 대통합의 기회로 이용된다는데, 우리나라 코로나 사태는 국민 대분열의 결과로 이어질 듯싶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개인을 추적하는 방역대책을 장기간 지속하면 필연적으로 불신, 반목, 혐오, 증오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죽어도 괜찮으나 코로나로는 죽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 이 현실에서, 반년 이상 코로나라는 화두만을 잡고 용맹정진 중인 많은 국민들이 어느 날 번개처럼 화두를 깨치는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제가 올린 스웨덴 관련 글의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우리나라 인구수 x 스웨덴 사망률 = 3만명 사망>을 하는 것을 보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다시 한번 짚어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아시아권과 서구권의 코로나 유행양상은 매우 다르다는 점입니다. 특히 동아시아권 국가들은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대부분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1명 내외입니다. 거기에 비하여 많은 서구권 국가들은 인구 10만 명당 50명도 훌쩍 넘습니다. 2, 3배 차이가 아닙니다. 50배도 넘는 차이입니다 (참고: 아래 그림은 BBC 기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6월 30자 통계로 작성된 그래프입니다. 최신 국가별 사망률은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차이는 방역대책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걸 아시아권 국가들의 방역대책 덕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수능 1등과 꼴찌의 차이를 과외선생 혹은 참고서 덕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특정 감염병 유행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인구집단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저항력의 수준입니다. 저항력을 가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행의 충격은 경미합니다. 지금 동아시아권 국가들처럼 말입니다. 



그럼, 인구집단이 가지는 기본적인 저항력은 무엇이 결정할까요? 매우 다양한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과거에 그 인구집단이 어떤 감염들을 경험하였는가?입니다. 제가 앞서 여러 번 설명드린 바 있는 cross-immunity의 핵심 개념이죠.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왜 일본은 신종 코로나 사망이 폭발하지 않을까?"와  "그 시절 불주사가 정말 신종 코로나와 관계있을까?"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Cross-immunity의 관점에서 볼 때 시종일관 감염 최소화를 지향점으로 해왔던 우리나라의 방역대책은 전형적인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염 최소화는 대중들을 쉽게 이해시키고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면역시스템 훈련 기회를 빼앗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향후 찾아올 다른 신종 감염병에 국민들을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감염병 유행시 과소도 과잉도 아닌 "적정 방역"으로 대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고,  "방역 1등 국가"라는 타이틀이 독이 든 성배인 이유입니다. 단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적정 방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을 듯합니다. 이번 유행에서조차 모든 사회적 역량을 총 투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설렁설렁 대응했던 다른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최종 성적표가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로서는 꽤나 억울한 일이 될 겁니다. 고액 족집게 과외선생 모시고 일주일 꼬박 밤샘하고 시험을 봤는데 매일 놀러 다닌 친구와 성적이 비슷할 때 느끼는 감정이랑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 지금처럼 하다가는 훨씬 더 중요한 다음 시험을 망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의 독성이 많이 약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상대가 약해졌을 때 노출의 경험을 많이 해 놓아야만 진짜 센 놈이 나타났을 때 우리를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증상이 있건 없건 모든 감염자를 발본색원해서 탈탈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역대책 하에서는 어불성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전의와 전력을 파악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상대방은 그럴 의사가 없는데 우리만 아직까지 사생결단의 비장함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집단면역 스웨덴, 사망자 150년 만에 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