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직전에 올린 "스웨덴, 충분히 잘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글에서 스웨덴의 높은 코비드 19 사망률은 그 전 해의 낮은 사망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글을 올리고 난 뒤 문득 다른 국가도 이런 패턴을 보이는지 궁금하더군요. 이러한 현상은 특수한 예외 상황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관찰되어야 하는 자연현상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역시 구글은 최고입니다. 주말에 몇몇 키워드를 넣어서 검색해보니 바로 보고서 하나가 짠~하고 나타나더군요. 본문을 읽어볼 것도 없이 제목 자체가 바로 제 질문에 대한 답이더군요. “Covid 19 death rate is higher in European countries with a low flu intensity since 2018” 아직 저널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연구 결과는 아니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저지 비즈니스 스쿨 소속 연구자가 내부 토론 목적으로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였습니다.
아래 그림은 32개 유럽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2018/2019년 독감 심각도와 2020년 코비드 19 사망률 간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는 그래프입니다. 독감 심각도에 대한 정보는 European Influenza Surveillance Network에서 가져왔으며 코비드 19 사망률은 2020년 6월 10일까지의 사망자수에 기반하여 산출된 값입니다. 전해 독감이 심각했던 나라일수록 코비드 19 사망률이 낮은 패턴을 보여주는데 회귀식의 설명력이 40% 정도 되는군요. 동일한 독감 심각도에서도 코비드 19 사망률의 차이가 꽤 있습니다만, 원래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설명력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4월에 올린 "그 시절 불주사가 정말 신종 코로나와 관계있을까"라는 글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감염병 유행이란 새옹지마의 원리가 작동했었던 세계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어렵게 지나가면 다음번은 쉬워지고, 이번에 쉽게 지나가면 다음번은 어려워지고.. 그 글을 쓸 때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독감 심각도와 코비드 19 사망률 간의 관련성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과연 우리가 이 코비드 19 유행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코비드 19와 독감에 대한 인류의 대응 방식은 이렇게 다른 걸까요? 백신도 있고 치료제도 있다는 독감 사망자수가 우리나라만 해도 매년 2~3천 명이라고 합니다. 독감 백신의 효과는 평균 50% 정도이고 유럽권 국가들의 65세 이상 고위험군의 평균 접종률이 50%가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감이 유행한다고 사회가 셧다운 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코비드 19는 독감 유행 때와 마찬가지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감염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망률이 10만 명당 1-2명에 불과한 동아시아권 국가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동안 건강한 사람들을 상대로 독감 전파를 막기 위하여 동선추적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방역한 일이 없었다면 코비드 19에도 이런 일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미 1년을 그렇게 보내 버렸습니다. 방역당국에서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한참 전부터 지역사회 전파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바이러스라고 봐야 합니다. 정밀 방역, 핀셋 방역, 선제 방역.. 이런 현란한 워딩은 그만 접고, 치료시설 긴급 확충하고 건강한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하루빨리 모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