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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Dec 27. 2020

지난 100년간 결핵 사망률은 왜 감소했을까?

백신이 있어도 자연감염과 교차면역을 통한 집단면역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역학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는 첫 시간, 학생들에게 거시적 관점의 중요성을 알려 주기 위하여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1860년대부터 약 100년 동안 영국의 결핵 사망률 감소 추이를 보여주는 아래 그래프입니다. 일단 화살표가 가리키는 시기의 정보는 가린 상태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렇게 결핵 사망률이 떨어진 것 같냐고? 


보통은 항생제, 백신 같은 답변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그러면 항생제나 백신은 모두 20세기 중반에서나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다음은 영양, 환경개선과 같은 답변들이 나옵니다.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영양과 환경개선만으로는 100년을 걸쳐서 지속적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결핵 사망률 감소 추세를 설명하기에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영양과 위생 모두 열악하기 짝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시기에도 결핵 사망률은 일시적으로 잠깐 증가를 보였을 뿐, 바로 감소 추세로 돌아섭니다.  


로버트 코흐가 결핵균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점이 1882년이고 항생제와 백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입니다. 하지만 결핵이라는 병이 왜 생기는지도 몰랐던 시절부터 항생제도 백신도 없었던 기간 동안 결핵 사망률은 줄기차게 감소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결핵 사망률의 감소를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개인에서 감염의 결과는 병원체와 숙주 면역력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결정되듯, 한 인구집단에서 감염병 유행 양상은 병원체와 인구집단의 면역력, 즉 집단면역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공진화의 원리 안에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병원체의 관점에서는 독성을 낮추면서 전파력을 높여 가는 것이 진화의 원리라면숙주의 관점에서는 저항력을 높이면서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진화의 원리입니다


20세기 초 영국 해군 소속 의사인 Sheldon Dudley 박사는 군함 혹은 기숙사 같이 통제된 환경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염병 유행을 장기간 주도면밀하게 관찰한 후 감염병 유행에 있어서 집단면역의 중요성을 상세히 보고한 바 있습니다. Dudley 박사의 주된 연구 주제는 디프테리아, 홍역, 인플루엔자 등과 같이 사람 대 사람으로 전파되는 호흡기계 감염병 유행에 관한 것이었죠. 그가 1927년에 발표한 최종 보고서의 결론 중 하나가 집단면역이 당시 영국의 호흡기계 감염병 치사율이 100년 전에 비하여 낮아진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Dudley 박사가 제시한 집단면역의 초기 개념은 제가 앞서 여러 번 설명한 교차면역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인구집단 구성원들의 다양한 감염 경험들이 교차면역을 통하여 인구집단의 저항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고이는 감염병의 치사율을 낮춰 가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그러나 백신 도입 후 집단면역의 개념은 감염병 유행 종식을 위하여 필요한 백신 접종률 산출을 위하여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집단면역은 “특정 병원체에 대한 특정 항체 양성률”이라는 관점에서만 논의되었으며, Dudley박사가 제안한 초기의 포괄적인 핵심 개념들은 완전히 잊히게 되었죠. 


최근 화이자, 모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다시 집단면역이라는 단어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는군요. 60~70% 항체 양성률에 이르기 위해서는 몇 명이나 백신 접종을 해야 하는지, 국가별로 언제쯤이면 그 날이 올 건지 열심히 따지고 있군요.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무려 인구의 90%가 백신을 맞아야 코로나 집단면역이 생긴다는 의견까지 피력했더군요. 결국 everybody가 다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소리같이 들립니다. 


코로나 백신이 고위험군에게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항체가 쉽게 사라지고 늘 변이가 발생하는 특징을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를 상대로 백신만으로 집단면역을 높이고 이를 유지한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봅니다. 백신이 있다 하더라도 집단면역의 상당 부분은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모르고 지나가는 다양한 병원체에 대한 노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들이 제공하는 저항력이 유행을 억제하는 기본 동력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1억 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현재 국내 상황이 좋지 않은 듯 보여, 저까지 나서서 코로나 관련 코멘트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다만 저는  모든 혼란의 씨앗은 0.03%, 0.07% 항체 조사에서 이미 뿌려졌다고 봅니다. 블랙스완의 출현으로 해석했어야 했던 대구 7.6% 항체 양성률은 애써 외면하고, 방역당국 스스로 “K방역 덕분으로 놓친 감염자 거의 없다”라고 믿어 버렸던 그 문제의 항체 조사.. 생각할수록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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