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0.03% 국내 항체 양성률을 발표한 다음 날, 대구의 항체 양성률 논문이 저널에 게재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연은 많지만 결론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코로나로 진단받은 적이 없으면서 현재 코로나 관련 증상도 없는 198명의 대구시민을 대상으로 항체검사를 해 보니 15명이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즉, 항체 양성률이 7.6%로 추정되었습니다. 대부분 과거에도 코로나 관련 증상이 없었고 주위에 코로나 확진자도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비록 대표성이 부족한 작은 표본이지만, 대구 전체 인구수로 확대해보면 최소한 18만 명이상의 모르고 지나간 감염자들이 존재했다는 해석까지 가능합니다.
이 조사는 연구비를 받아서 한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항체 조사를 해줄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조사입니다. 인력과 예산 없이 의사들이 일하는 틈틈이 외래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라서 제한점은 당연히 있습니다. 제가 앞서 글에 적었듯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중화항체검사에 기반한 0.03%는 항체 양성률을 과소평가한 것이라면, 선별검사만 시행한 이번 조사 결과는 이를 과대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항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2월 말에 유행의 정점을 보인 대구는 7.6%조차 과소평가일 수도 있습니다. 즉, 이런저런 제한점을 다 고려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숫자의 모르고 지나가는 무증상 감염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지난주 방역당국에서는 항체 양성률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놓친 감염자가 거의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대구가 제외되었다는 점을 조사의 제한점으로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한 대구를 제외한 항체 양성률을 발표하면서 조사의 제한점이라고 포장하면 안 됩니다. 참치를 뺀 김치찌개는 제한점이라고 해도 되지만, 김치를 뺀 김치찌개는 제한점이 아니죠. 그냥 김치찌개가 아닌 겁니다.
대구를 뺀 0.03%의 항체 양성률이 어떤 사연으로 발표하게 되었는지는모르겠습니다. 서울의 특정 의료기관을 방문한 1,500명의 혈청을 포함하여 항체 양성률을 추정할 거였다면, 대구의 특정 의료기관을 방문한 사람들의 혈청도 같이 포함시켰으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았더군요. 이건 매우 쉬운 일입니다. 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고 참여자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해서 혈액을 뽑아야 했던 198명의 조사보다 훨씬 더 쉬운 일입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정보를 샅샅이 털어서 하는 동선추적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습니다. 거부감은커녕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편하긴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높은 사망률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일본과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한 우리나라의 코로나 사망률이 고작 1.3배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고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습니다. 단지 일본이 통계를 조작하기 때문이라고 믿어버립니다. 항체 양성률 0.03%조차 방역을 너무 잘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방역당국이나 관련 전문가들도 무조건적인 감염 최소화를 지향점으로 하는 우리나라 방역대책의 문제점을 눈치챘을 겁니다. 아시아권의 코로나 양상은 유럽이나 미국과 다르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국민들이 현재의 방역대책을 절대 지지하고 있으니 방역당국에서는 굳이 문제점을 들춰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했다면 출구전략을 모색했어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항체 조사를 했었더라면 왜 개인을 밀접 추적하는 현재의 방역정책을 바꿔야만 하는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코로나 같은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를 상대로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장기간 대응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고위험군은 보호하되, 건강한 사람들은 면역력 강화에 힘쓰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편이 개인에게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늘었을 겁니다. 그런데 0.03% 항체 양성률 조사에 기반하여 이 모든 기회를 다 날려버린 겁니다.
지난 주말 복지부 장관께서 나와서 우리나라는 항체 보유자가 거의 없어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며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되는 그 날까지 계속 지금처럼 살아야 한다고 발표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계속 이렇게 살기가 싫습니다. 생명체 탄생 이래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연마시켜왔던 슈퍼 AI급 유기체의 엄청난 능력을 통조림 깡통 급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현대 사회의 방역이라는 개념에 자존심마저 상할 지경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유기체의 능력을 일깨우면서 이 놈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신종 코로나 정도의 바이러스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그 수많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들과 그러하였듯.. 말입니다.
<추가>
어제 MBC뉴스에서 이 논문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하더군요. "방역 전문가들은 대구처럼 대유행이 있었던 지역도 집단 면역에 필요한 항체 형성률 60~70%까지는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전까진 결국 마스크와 거리두기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예외 없이 “Expert nonsense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언급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반복되는군요. 방역 전문가들은 하루속히 항체 형성률에 기반한 집단면역 기준치 60~70%가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수치인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하면서도 유효한" 백신 개발이 언제쯤 가능한 것인지, 장기간의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한 번쯤은 고민해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