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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Apr 12. 2021

무분별한 PCR 검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2004년 Nature에 “Cancer without disease”라는 제목의 아주 짧은 에세이 형식 논문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Judah Folkman교수, 하버드 의대 소속의 유명 연구자로 지금은 작고하신 분이죠. 그런데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암인데 병이 없는 암이라니.. 우리말로 해석하면 아주 어색하게 느껴지는 제목이죠.


이 논문은 이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살아생전 암으로 진단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 중 우연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을 부검해 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암을 가지고 있더라는 겁니다. 40-50대 여자의 3분의 1은 유방암을, 50-70대 대부분은 갑상선암을 가지고 있고, 전립선암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그 연령대 사람들 중에서 암으로 진단받는 사람은 1%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발견된 암은 상피내암으로 주변 조직에는 침투하지 않고 상피세포층에만 국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피내암을 임상적으로 암으로 봐야 하느냐에 대하여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암세포의 존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상피내암도 엄연히 암세포가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즉,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른 채 “Cancer without disease”의 상태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진단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 한 방울로 암을 조기 진단한다는 첨단기술은 연구자들이 아주 선호하는 연구 주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기술이 상용화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Cancer without disease”로 살고 있었던 대부분 사람들이 진짜 암환자가 되어 버리는 희대의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소위 전 인류의 암환자화가 시작되는 거죠.



저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Cancer without disease”의 감염병 버전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CR 검사는 극미량 바이러스 조각만 있어도 양성으로 진단할 수 있는 초민감도를 자랑하는 검사방법입니다. 코비드 19는 유행 초기부터 무증상과 경한 증상의 비율이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었던 감염병이었는데, 자신이 평소 가진 면역력으로 바이러스가 충분한 증식을 하지 못하도록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나 매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증상이 있건 없건 가리지 않고 시행하는 PCR 검사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Covid 19 without disease”로 진단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소수의 진짜 환자들과 함께 “확진자”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됩니다. PCR 검사를 선제적으로 많이 하면 할수록 “Covid 19 without disease”의 숫자는 더 빠르게 늘어나고, 사회는 확진자 수 증가 그 자체만으로 패닉에 빠집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질문하고 따져봐야 할 위험한 정책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방역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회가 됩니다.


그 과정 중에 매우 기만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검사를 하지 않아서 확진자로 분류되지 않았을 뿐 자신도 모르고 지나가는 아주 많은 수의 “Covid 19 without disease”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숫자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확진자수보다 10배쯤 더 많다는 사실만 정확히 인지해도 사람들은 이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과연 이 병이 지금까지 그 사회에 존재해왔던 다른 감염병과 다르게 대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병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공포가 지배한 사회에서는 어떠한 이성적인 논의도 불가능합니다.


이쯤에서 감염병을 어떻게 암과 비교할 수 있냐고 의를 제기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 타인에게 전파 가능성이 있는 감염병은 암과 그 성격이 다른 것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염병은 심각도에 따라 1급에서 4급까지 분류하여 국가가 법정감염병으로 관리하고 있죠. 현재 코비드 19는 1급 감염병, 즉 “생물테러 감염병 또는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 발생의 우려가 커서 발생 또는 유행 즉시 신고. 음압격리와 같은 높은 수준의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유행을 1년 이상 경험한 현시점, 방역당국에서는 진정으로 코비드 19, 특히 동아시아권의 코비드 19가 1급 감염병에 해당하는 위험한 병이기 때문에 전 국민 백신 접종이 끝날 때까지 지금과 같은 방역정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PCR 검사가 극단적으로 남용되는 경우, 전파력만 강하면 치사율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흑사병급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기간에 전 인류를 다 감염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전파력이 높은 그러나 특별히 위험하지 않는 미지의 신종 바이러스를 상상해봅시다. 현재 세계적으로 매일 약 15만 명이 항상 사망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해보면 많은 수에서 그 미지의 바이러스가 검출될 겁니다. 이들은 바이러스가 있건 없건 사망했을 사람입니다만, 명망 있는 누군가가 미지의 바이러스가 이들의 사망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무증상자를 상대로 PCR 검사를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세기의 판데믹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코비드 19가 이 미지의 바이러스와 동일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정 부분 닮은 점은 있습니다. 대부분 코비드 19 사망은 고령자면서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때 전립선암을 조기 진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혈액에서 전립선 특이 항원 (Prostate specific antigen, PSA)을 검출하는 검사가 널리 사용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검사가 암 조기진단에 도입된 후 미국의 전립선암 발생률이 급증하게 되는데, 시간이 좀 지난 후 그 상당수가 “Cancer without disease”인 것으로 밝혀집니다. 따라서 PSA검사는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이 논란을 보면서 PSA를 처음 학계에 보고했던 Richard Albin 교수가 뉴욕타임즈에 기고문 하나를 보냅니다. 제목이 “The Great Prostate Mistake”로 Albin교수는 그 글에서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나는 40년 전에 내가 했었던 그 발견이 현재와 같은 공중보건학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의료계는 현실을 직시하고 PSA가 암 조기 진단에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즉시 멈춰야 한다..”


PCR 검사 개발로 노벨상을 탄 Kary Mullis는 코비드 19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9년 8월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만약 Mullis가 생존해 있었더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코비드 19 사태를 보고 어떤 코멘트를 했을까요? 자신이 개발한 검사가 이렇게나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할까요? 아니면 Albin교수처럼 “The Great PCR Mistake”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전 세계 언론사에 보내고 SNS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자 노력했을까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Mullis가 후자의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팩트체크의 대상이 되고 Misinformation의 붉은 딱지가 붙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군요.


PSA 검사나 PCR 검사나 모두 훌륭한 과학적 연구의 성과로, 적절하게 사용될 경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유기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오남용 되기 시작하면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감염병 유행시 무분별한 PCR 검사가 끼치는 해악은 PSA 검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는 백신 접종이 완료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없는 확진자를 양산하면서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무분별한 PCR 검사를 하루속히 중지해야만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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