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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May 14. 2021

귀가 들린다!

일곱 번째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엄청난 기운을 경험한 뒤부터는 얼굴 쪽에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흡사 얇은 종이를 손에 들고 구겼다 폈다를 반복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근육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더군요. 아시다시피 얼굴의 근육들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웃을 때 사용하는 근육 운동과 화가 났을 때 사용하는 근육 운동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이때는 오욕칠정의 극과 극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서로 다른 근육들이 한꺼번에 수축과 이완을 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참장공을 중지하는 순간 그대로 깨끗이 사라지고, 개운함만 남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죠.


안면근육의 현란한 움직임을 한 주정도 경험한 후, 이제는 두개골 안쪽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어요. 안구를 둘러싼 부위, 코 옆, 입천장 위 쪽 등 여기저기서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섬세하게 터지는 듯했습니다. 해부학적 위치는 부비동 쪽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물건 포장 시 사용하는 뽁뽁이를 하나씩 터트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특히 놀라운 것은 청신경종양이 있는 왼쪽 귀 주위에서 바스락거리거나 뭔가가 조금씩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 느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환청이라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진짜예요. 의식은 이 모든 판단이 가능할 정도로 늘 또렷했으며, 내가 하는 일은 그냥 현재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방해하지 않고 잠자코 구경만 하면 되는 거였죠. 이렇게 쉽고 흥미진진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왼쪽 귀 쪽에서 신호가 시작된 지 사흘쯤 지난 후입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새벽에 태극권 수련을 하고 연구실로 출근을 합니다. 어딘가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드는 순간, 너무 놀라서 멈칫하게 됩니다. 그동안 저 멀리 아득하게만 들렸던 전화 신호음이 아주 가까이서 잡히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기를 수십 번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죠. 동영상을 틀어서 이어폰을 번갈아 끼고 확인을 해봅니다. 단어 분별은 여전히 불가능했지만, 소리 그 자체를 듣는 능력이 그 전날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날은 아무한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왠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것만 같았거든요. 자는 둥 마는 둥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수화기를 들어봅니다. 아~ 여전히 어제처럼 신호음이 잡히는 겁니다. 그제야 가족들한테도 이야기를 했고 관장님께도 이야기를 했죠.


물론 들린다고 해서 건강한 귀처럼 깨끗하게 들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어요. 하지만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력이 좋아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죠. 몇 주 후 병원에 가서 청력검사를 해 봅니다. 역시 청력이 좋아진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어요. 제가 별 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비인후과 교수님이 저보고 뭘 했냐고 물어보시는데 대답은 못하고 씩~ 웃기만 했네요.


여덟 번째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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