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엄청난 기운을 경험한 뒤부터는 얼굴 쪽에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흡사 얇은 종이를 손에 들고 구겼다 폈다를 반복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얼굴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근육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더군요. 아시다시피 얼굴의 근육들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웃을 때 사용하는 근육 운동과 화가 났을 때 사용하는 근육 운동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이때는 오욕칠정의 극과 극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서로 다른 근육들이 한꺼번에 수축과 이완을 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참장공을 중지하는 순간 그대로 깨끗이 사라지고, 개운함만 남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죠.
안면근육의 현란한 움직임을 한 주정도 경험한 후, 이제는 두개골 안쪽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어요. 안구를 둘러싼 부위, 코 옆, 입천장 위 쪽 등 여기저기서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섬세하게 터지는 듯했습니다. 해부학적 위치는 부비동 쪽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물건 포장 시 사용하는 뽁뽁이를 하나씩 터트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특히 놀라운 것은 청신경종양이 있는 왼쪽 귀 주위에서 바스락거리거나 뭔가가 조금씩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 느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환청이라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진짜예요. 의식은 이 모든 판단이 가능할 정도로 늘 또렷했으며, 내가 하는 일은 그냥 현재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방해하지 않고 잠자코 구경만 하면 되는 거였죠. 이렇게 쉽고 흥미진진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왼쪽 귀 쪽에서 신호가 시작된 지 사흘쯤 지난 후입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새벽에 태극권 수련을 하고 연구실로 출근을 합니다. 어딘가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드는 순간, 너무 놀라서 멈칫하게 됩니다. 그동안 저 멀리 아득하게만 들렸던 전화 신호음이 아주 가까이서 잡히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기를 수십 번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죠. 동영상을 틀어서 이어폰을 번갈아 끼고 확인을 해봅니다. 단어 분별은 여전히 불가능했지만, 소리 그 자체를 듣는 능력이 그 전날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날은 아무한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왠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것만 같았거든요. 자는 둥 마는 둥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수화기를 들어봅니다. 아~ 여전히 어제처럼 신호음이 잡히는 겁니다. 그제야 가족들한테도 이야기를 했고 관장님께도 이야기를 했죠.
물론 들린다고 해서 건강한 귀처럼 깨끗하게 들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어요. 하지만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력이 좋아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죠. 몇 주 후 병원에 가서 청력검사를 해 봅니다. 역시 청력이 좋아진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어요. 제가 별 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비인후과 교수님이 저보고 뭘 했냐고 물어보시는데 대답은 못하고 씩~ 웃기만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