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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pr 01. 2020

신과 번뇌와 열반까지 낳았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

 나는 요 몇년 사이에 가장 재미있게 본 책으로 항상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하마터면 깨달을 뻔>을 꼽는다. 이 책은 불교의 사성제를 뇌과학으로 푼 버젼이라 할 만한데, 저자는 우리를 괴롭히는 번뇌의 원인으로,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좌뇌의 분별능력을 제시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좌뇌란 정보를 분류하고 패턴을 찾고 원인결과를 따지는 영역인데, 이 능력은 인류 초기에는 분명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수풀 속에 호랑이가 숨어서 기다리는 데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는 초기인간은 분명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테니.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패턴 파악 기능은 생존 문제의 차원을 떠났음에도 더 강화되었다. 심지어는 번뇌를 사고하는 뇌를 또 사고하는 식으로 끊임없는 에고/분별의 반복이 계속되는데 그래서 결국 좌뇌가 실체와는 거리가 먼 해석을 반복, 생각에 갇혀 고통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생각/해석'이지 실체인지는 알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 교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설명이 사성제 (고집멸도)에 대한 매우 현대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삶의 본질 (고) 고통의 원인 (집) 고통 해소의 경지 (멸) 고통 해소의 방법(도)를 좌뇌의 분별능력에 따라 풀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략 요런 것이다. 불교 사상의 요체. 




 철저히 진화 관점에서 신의 개념을 살펴보는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을 읽다가 그 책이 생각났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은 원시 인류 출현 당시부터 차근차근 진행된 뇌의 진화에 따른 기능 변화들이 결국은 신이라는 개념을 창조하는 데 이르렀다는 걸 그간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제시한다. 


그 변화의 과정은 이렇다.  첫째로 지능이 발달한 인류가 등장했다. 둘째로 자아를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셋째로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추측과 인식이 생겨났다. 넷째로 자기 스스로를 고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메타인지가 생겨난다. 다섯째로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축을 상상하고 그 속에서 가설과 실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다섯가지의 인지변화가 뇌의 발달에 따라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고민, 조상에 대한 인지를 거쳐 고도의 '신' 개념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저 다섯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이 개념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특정 조건을 갖추게 된 인류가 종교를 발달시키게 되고, 때맞춰 밀집하고 규모가 크기 시작한 사회에서 이를 응용하고 적용하게 됐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 (책에서는 이를 성과 속은 항상 함께한다고 표현한다.) 이 개념을 통해서 왜 고대에 교류가 없었음에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고도로 발달된 종교적 개념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지까지 설명해내는데...읽고 나면 지적 희열이 꽤 크다.


 이러한 과학적 설명과 별개로, 나는 책에서 말하는 첫번째에서 두번째의 진화단계, 혹은 그 이전단계의 인지가 불교에서 추구하는 깨달음 / 지금 이 순간에 있기 / 열반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을 했다. 화두 중 그 유명한 '부처의 경지란 산짐승의 마음'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사실 불교 뿐 아니라 많은 종교들이 이야기하는 궁극의 경지란 결국 분별지를 불식시키고, 생각과 실재를 착각하지 않으며 과거-미래를 끊고 지금 이 순간에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마터면 깨달을 뻔>에서는 왜 선사들의 화두가 왜 그리도 말이 안되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하는데, 좌뇌의 분별력은 넌센스를 만나면 일시정지 된다는 것이다. 넌센스에 계속 시달리면 분별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약해진 순간 우리가 실상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매일 느끼듯이, 그리고 우리는 수행자가 아니기 때문에...이 뇌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다. 내 뇌의 번뇌는 사실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고, 마음 이전에 물리적인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 문제. 그러니까 뇌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분별과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자는 걸 지상 과제로 삼은 방법론이 약 2500여년 전에 확립이 되었고, 그 방법론의 총체를 우리가 불교라고 부르는 것이지만...


이럴 수는 없잖아


 불교의 개념까지 생각을 해 보면, 5단계에 걸친 뇌의 진화 과정이 완료됐을 때 인류에게 벌어진 사건이란 정말로 기이하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신의 존재를 생각하며 그/그녀를 통한 문제해결을 추구하고 있었다면, 어떤 문화권은 자신의 생각 자체에 문제의 근원이 심어져 있지 않은가 의심하고 각종 관찰을 통해 이를 파헤치는 방법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뇌라는 존재란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온 우주를 파악하고 그것을 주관하는 존재까지 만들어 놓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뇌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론을 개발해냈다. 이 우주에 이보다 더 기이한 존재가 있을까? 나는 가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과연 우주에 인간과 같은 존재가 있긴 할까...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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