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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Sep 04. 2020

내가 되고 싶은 내가 싫어졌다.

 요즘 나는 다른 종류의 걱정을 하고 있다. 내 걱정의 대부분은 사실 미래의 일들 - 망하면 어떡하지, 한심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무능하면 어떡하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요 몇개월간 나는 계속해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마 부동산 폭등이었던 거 같다. 나는 단 한번도 살면서 내 집을 마련할 거란 생각도 안해봤고, 스무살 이후에 내가 결혼을 할 거라는 생각도 한번도 안해봤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없다.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너무 잇속에 어둡게 산 건 아닐까. 물론 내가 돈을 함부로 쓰느라 내 신세를 내가 꼰 부분도 있지. 그러나 남들보다 좀 더 영악하게 살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건 윤리적이지 못하니까 이건 내 성미에 맞지 않으니까 이건 내 원칙이 아니니까. 이건 순리가 아니니까...그런 고려들을 많이 해온 삶인데. 앞으로도 그런 내 기준들을 지키고 살고 싶은데. 일희일비 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그 단어들. 레버리지니 한방이니. 이런 것들을 노리는 삶이 아니라 그냥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착실하게 그냥 살아가고 싶고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는데. 그 힘의 하나로서 살아가고 싶고, 그 다수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살아가면서 꼭 보고 싶은데. 삶에는 다양성이 필요하고 부에 따라 삶이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믿는데. 그걸로는 쉽지 않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



 인간관계도 그렇다. 나는 정말 주변사람에 대해 신경을 참 안쓰는 편이다. 관계가 딱히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섬세한 편도 아니다. 그다지 넓지도 않다. 그래서 작게는 주변에 소개팅 해줄 일도 없고, 넓게는 도움을 구할 일도 잘 없다. 물론 정말 나를 어여삐 봐 준 훌륭한 분들이 나와 좋은 인연을 많이 맺고 있지만...직장생활을 10년을 해왔는데 나한테 남은 게 무엇이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입사동기 회사 선배 후배 동료 거래처 그렇게 다 친하고 그걸 활용해서 자신의 커리어들을 영리하게 쌓아나가는데. 나는 내 삶을 지키는 것도 바뻐서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너무나 벅차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너무 중요해 무관심하고.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는 것에 너무 서툴고...그런 것도 다 연습하며 느는 건데. 그러지 말았어야 하나.


 사람들을 좀 더 살갑게 대하고 챙기고 넓게넓게 인연 맺으며 살았어야 하는 건가...그런 생각을 매년 하게 되는 거 같다. 근데 아마 안될꺼야...그런 성격이 아니다. 스타트업 쪽에서 일을 하며 그런 생각? 후회?가 조금 더 심해졌다. 사실 다 상대적인 것이지. 이 판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정신없고, 자주 바뀌며, 거기에 적응 할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젊은 스마트 피플들의 판이니까. 아무래도 나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쌓았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냥 내 할일만 묵묵히 하면서 살아왔고 내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 내 나름의 원칙들을 신경쓰면서 정말 나름대로 떳떳하게 살아왔는데. 그래서 무엇이 나에게 남아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근데 내가 좋아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또 고작 요 근래의 세상의 흐름 때문에 다시 돌아보게 되는 원칙이라면 도대체 내 남은 삶에서 원칙대로 사는 삶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심약한 것이다. 아, 아빠는 이 순간을 좀 늦게 깨닫고 병이 들어버린걸까? 내가 좋아서 살아왔던 혹은 어찌 할 수 없던 삶의 방식이 사실 내 무덤을 파는 길이었다는 걸 깨달아서...


 내가 고수하는 원칙들을 죽을때까지 잘 지키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원칙이란 것도 그냥 나의 오만이나 변명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서 요즘 마음이 너무 복잡해. 내 이런 모습들 속에서 내가 부정하려던 윗 세대의 편린들이 보이기도 하고. 삶을 내 뜻대로 이어나가는 것이 왜 이리 어렵나.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제일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나? 꼽아보니 요요하는 순간들을 제외하고 나면 아마 첫 직장 합격했을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들과는 다르게 살았다는 자부심. 대학생활 내 뜻대로 해왔었으니까. 경쟁에 매몰되서 경주마처럼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배운 것들 남에게 공유하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만나고 살고, 내 원칙을 지키고 내 밥그릇 찾아서 자립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는 기쁨이 컸었던 그 순간.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속물적인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대학생때 수준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


 이 시기들이 지나가면 내가 가진 원칙과 방향들이 조금 더 선명하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방향은 바뀌지 말고....하지만 몇가지는 점점 선명해진다. 모든 것을 갖추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진 게 늘어날수록 원칙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기질을 극복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 이재에 밝은 사람이 청빈할 수 없고 한번이라도 이겨본 사람이 안빈낙도 할 수는 없다. 허생은 그저 소설 속의 사람일 뿐이야. 어쨌든 나는 월급쟁이로서의 자부심이 있고, 그것으로 내 삶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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