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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Sep 21. 2020

무의미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 현명함

불교의 14무기에 대해.

 우주는 영원한가요? 영혼(자아)와 신체는 다른가요?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들이 과학적으로 많이 밝혀진 요즘이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궁금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질 않아서, 불교에서도 '십사무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생전에 답변을 주지 않은 열 네가지 질문이라는 뜻인데. 불교 경전 특유의 나열식 서술때문에 열 네가지이지 실제로는 세가지 물음이다. 우주의 영원 / 우주공간의 무한성 / 영혼과 육체 / 깨달은 자의 사후세계 각각의 질문이 '있다 없다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등으로 배리에이션이 되서 열 네가지가 되는 것이다.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저 질문들에 대해서 '나 고타마는 거기에 대해 있다/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을 주지 않았을 뿐 싯다르타의 답변은 명확하다. 그런 질문은 너무 비실용적이야. 열 네개의 질문을 두고 고민하는 건 우리의 목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타마의 답변을 지금 식으로 좀 더 해석하자면 이런 거다. 사성제랑 팔정도, 십이연기라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건 생노병사과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인데 우주니 영혼이니를 답변하는 게 도대체 이 목적에 무슨 보탬이 되느냐? 우주를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사후세계를 아는 사람이 생노병사를 벗어났는가? 그의 답변을 좀 더 거칠게 말하면 그거는 여기서 찾지 마시고 다른 데서 찾아보세요...에 가깝겠다.




 어린 시절에는 십사무기 부분을 읽으면서 좀 아쉽다는 생각도 했다. 종교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답변을 주는 거 아니야? 왠지 이 사람은 알고 있을 거 같은데 왜 답을 안줬을까. 뭔가 우주적인 음모 같은게 숨어있는 건 아닐까. 깨달으면 그런것도 다 통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지나고 나서 혼자 생각을 해보니 그런 이유라기보다는, 상술한 것 처럼 합목적적인 사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종교들이 (대승불교라고 불리는 이후의 계열을 포함해서) 이러쿵 저러쿵 저 문제들에 대해서 나름 내놓은 답과, 과학적으로 추론/실증된 실상들을 비교해보면 이런 합목적성은 좀 얄밉다 싶을 정도로 정확한 판단이었던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우주의 공간적 크기에 대해서 과학이 밝혀낸 걸 생각해보게 된다. 우주공간은 유한하지만 우리가 도달 가능한 속도 이상으로 우주공간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정 공간 이상 나갈 수 없으며, 시간이 흐르면 먼 우주의 관찰도 불가능해진다는 게 과학의 결론인데...이거는 종교적 사유를 뛰어넘는 정말 초현실적인 현실 아닌가. 이걸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냐고 ㅎㅎ


 어쨌든 기복신앙이 강한 일상의 불교생활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교가 초자연이나 형이상학에 대해서 보여주는 입장은 시종일관 쿨하다. 우리(교단/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니 그것이 있건 없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섯가지 신통력? 있지. 근데 그거 갖는다고 생노병사가 해결되니? 사람 살리는 법? 전염병으로 죽은 마을에서 생존자가 있는 집에서 겨자씨 얻어오면 아들을 살려줄께. 없지? 삶이란 게 다 그런 것이다. 사랑? 선행? 악행보다 훨씬 낫고 권장할만한 일이지.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안돼...뭐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너무 차갑고, 뭐 이러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당대에도 욕을 참 뒤지게 많이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불교의 그런 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목적 지향적인 사고. 문제의 원인을 밝혀놓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세우고, 그 방법에 굳이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리 흥미롭고 그럴싸한 것들일 지라도 돌아보지 않는 철저함.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매력적인 까닭은 내가 어릴때부터 불교문화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겠지. 불교의 정신에서 자비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보통 '금강지'나 '독화살이 날아온 방향보다 치료가 먼저다'라고 표현되곤 하는 지혜에 대해서도 요 근래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냥 문득, 무속인의 SNS 코멘트들을 둘러싼 말들과 내 생각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십사무기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적어본다. 일을 할 때나 인생에 있어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열네가지 질문들, 그 섹터에서의 초자연에 휘둘리거나 빠져들었나. 나에게도 '답변하지 않음'의 자세가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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