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전 미니 달항아리
내 나이 37세에 미니 달항아리 같은 걸 15만원 씩 주고 살 줄 몰랐지. 온전히 감상할 고즈넉한 공간도 없고. 뭘 담아놓을 것도 아니고. 왜 샀냐고 물어보면 그냥 이뻐서 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물건. 그나마도 생활과 타협해 가장 작은 사이즈를 사고 만 거야.
그렇다고 내가 무슨 그릇에 깊은 조예를 가진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 유홍준 교수 책 보면서 문화재 러브에 빠진 적도 있지만 성인 되고 나서 내 취향은 그냥 오늘의집 1인 식기세트 이상을 못나간다. 그냥 좋은 취향 가진 분을 알게 돼 우일요를 알게 됐고 그게 너무 이뻤고 갖고 싶었고 찾다가 어느 새벽, 같은 작가의 달항아리를 발견하고는 냅다 사버렸다.
달항아리를 네이버 페이로 샀다는 이 기묘함을 곱씹으며 택배를 기다릴 때는 또 미친 충동구매를 했구나 후회했는데, 볼 때마다 잘 샀다고 생각한다.
맥시멀리스트 살림인의 생활공간 속에 덩그러니 있어 갓 쓴 바이커 같은 기묘한 느낌이긴 하다. 좀 더 잘 어울리는 구석을 만들어 줘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보면 괜히 맘이 둥글둥글 해진다. 마냥 둥근 게 아니라 약간의 삐뚤어짐과 결이 있는데 그것도 좋다. 무심코 뭘 집어넣었다가 후다닥 다시 빼기도 한다. 꽃 같은 정신의 영양제 같은 거라고 해 두자. 샀다고 하면 놀리다가 사진을 보면 그래도 이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같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