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용지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Nov 18. 2018

이 세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겨레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 기획기사를 보고

"부지런하게 노력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건 1970년대에나 통할 법한 얘기다. 박예지도 꿋꿋하게 부지런했다. 고시원으로 내몰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카페 종업원, 콜센터 직원, 건물 주차요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과 고시원 월세, 부모 생활비 등을 치르면 금세 바닥이 보였다. 최소한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는 ‘종잣돈’은 허락되지 않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제도는 박예지에게 가닿지 않는다. 일말의 여유도 없이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삶을 산다는 건 그만큼 정부 제도를 활용할 시간이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월세를 일부만이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저한테 거의 없어요.”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항상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절망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 세계의 한편에서는 투명인간 같은 빈곤이 존재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무런 전망도 가질 수 없는 세계에서 '노력'이니 '자구책' 이니 하는 기만들에 당한다. 해고를 당하면 다른 일자리를 찾으러 떠나고, 발전의 여지가 없이 착취당하는 삶 속에서 1평 2평의 방에서 어찌됐건 꾸역꾸역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간다. 근데 또 어떤 세계에서는 워라벨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사치라느니 혹은 사치가 아니라느니. 4차 산업혁명이라느니, 자기계발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여가를 누리면서, 저축도 하고 미래도 설계하면서 자신의 교양과 세계를 넓혀나간다. 

 둘의 공통점이라고는 '자력갱생'이 한 단어를 금과옥조로 새기고 산다는 점 말고는 없다. 세계의 운이라던가 구조적 모순이라던가 부조리는 우리들 마음속에서 고려대상 조차 되지 못한다. 근데 나는 도저히 이 둘을 같은 세계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샌가 나는 후자의 세계가 이 세계 전부인 것처럼, 혹은 이 세계가 나아가야 할 모습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을 비웃게 됐다. 사람은 교양이 넘쳐야 한다느니, 잘 배워야 한다느니, 사랑받고 커야 한다느니 자존감이 좋아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란 얼마나 이런 세계에서 기만적인 이야기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모순적인지. 

 대기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실감했던 것은 이제 그런 좋은 일자리는 학부 시절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자제들에게 더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이 될 기회는 좋은 환경에서 주어진다면, 도대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얼마전 기사에서는 로스쿨 졸업생 중 로펌에 가는 졸업생들 90% 이상이 SKY출신이라는 기사를 봤다. 기업이고 공직이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들의 태생이 다 엇비슷하고, 이 세계의 고통 중 아주 일부분만 알고 있다면, 교육이 그들에게 어떠한 상상력도 심어줄 생각 없이 매년 전문직 기계만을 만들고 있으니, 세계가 계속 이렇게 비극적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추세가 아닐까. 물론 누군가는 그 와중에 '노오오력'을 해서 운을 타고나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위를 성취하지만, 그것이 세계를 바꾸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보통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과 같은 이들을 핍박하기 마련인지라.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내 의견을 피력하고 지인들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고...사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를 때가 더 많아졌다. 그래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 하나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계속해서 상상하고, 취합하고, 살펴보는 일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나의 생활 습관, 나의 호오와 취향이 이 세계의 극히 일부분임을. 결코 당연하지도 않고 당연할 수도 없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사는 것에서부터 이해와 대책도 가능할 것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실로부터. 고통을 상상할 수 있고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택시 맘 놓고 몰고, 맘 놓고 타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