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7
최근 며칠간 몸이 안 좋아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는데, 휴일의 마지막 날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 근처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를 몇 그루 만나고 왔다.
차를 타고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풍경은 많이 달라진다. 무채색 아파트가 사라지고 초록색 논밭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답답했던 숨통이 확 트인다. 아이가 생기면서 풍경 사진을 찍으러 밖에 나올 일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보게 된 시골 풍경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첫 번째로 본 나무는 은행나무 노거수였다. 수령이 무려 750년이었는데 주변에 보호수 표지판이나 펜스가 없고 나무 옆에 쌓여있는 비료포대로 짐작 건데 특별한 관리를 받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정말 멋진 나무인데 약간 방치된 느낌이라 왜 그럴까 주변을 돌며 좀 살펴봤다.
아마 태풍에 상처를 입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큰 가지 - 가지라고 말하기엔 너무 굵었지만 - 서너 개가 부러져서 잘라내고 수술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가지가 부러지면서 수형이 상했지만 이렇게 둥치가 굵고 잎도 무성하고, 심지어 뿌리에서 새로운 은행나무가 자라날 정도로 대단한 나무를 사람들이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아쉬웠다. 외모가 달라져도 본래 지니고 있던 본질적 가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멋진 나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가을에 다시 와 볼 계획이다. 그때 노란 단풍옷을 입고 있으면 은행나무가 덜 외로워 보이지 않을까. 사진도 좀 더 제대로 찍어줘야지.
덧 : 옆에 이 나무에 얽힌 짧은 이야기를 적어둔 안내판이 있었다.
은행나무에 사는 도깨비
옛날 이 마을에 가난하지만 어질고 착한 송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밤, 송 씨는 도깨비가 은행나무에서 나타나 날마다 돈을 갖다 주는 꿈을 꾸었다. 송 씨는 아무래도 예사 꿈이 아닌 것 같아 조상님 제사를 지내려고 아껴둔 쌀로 떡을 하여 은행나무에 제를 올렸다. 그러자 송 씨네 집은 마을에 큰 변고가 생겨도 탈이 없고 차츰 재산이 늘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송 씨의 자손들이 아직 이 마을에 살고 있을까. 까마득한 조상님으로부터 시작된 부의 축적이 과연 잘 유지되고 있을까 궁금했다.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면 같이 짧은 토론을 해봤을 텐데. 나중에 아이들이 좀 자라면 함께 오래된 나무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싶다. 아마 엄청 가기 싫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