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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22. 2019

친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계란 안쪽 껍질 같던 너

 

 미혜는 학창 시절의 전부였다. 그 시절의 고민과 고통은 모두 그녀에게 공유되었다. 두 번의 입학과 졸업, 첫사랑, 엄마, 꿈, 음악, 수능, 왕따, 그리고 죽음. 푸르고 서럽던 10대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는 건 서로에게 서로 뿐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내게 계란 안쪽 껍질과도 같았다. 나를 촘촘히 둘러싼 관계 가운데, 그녀는 가장 속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스물 한 살 이후, 미혜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홍콩으로 학교를 옮겨 다녔다. 일 년에 한 번 보면 다행이겠다 싶은 7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녀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나날을 보냈다. 또한, 우리는 연애를 했다. 그 때마다 애정의 순위는 전복되었다. 1위는 늘 각자의 애인이었다. 서로의 생일을 잊은 채 축하 메시지 한 통 보내지 않은 해도 있었다. 우리 사이가 멀어진 것은 아닌데. 뭐랄까,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랑도 우정도, 그 밖의 모든 감정도 강요와 설득으로 완성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 애도 무조건 좋아하길, 또 함께하고 싶어하길 기대했던 건 욕심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계란 껍질같이 온전하고 예민한 관계들은 점차 바스러졌다.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노력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애정의 질량을 똑같이 가져갈 수가 없었다.


 엊그제 연락이 왔다. 여름휴가 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카톡이었다. 액정 너머 ‘여행’이라는 글자를 바라봤다. 몇 년간 수도 없이 폐기되었던 우리의 여행 계획이 떠올랐다. 라오스는 우기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온다던데. 그 곳에 너와 가고 싶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과 아무렇게나 입은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예쁘고 다정한 나의 친구야, 어떤 방식으로든 열여섯의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 네가 있는 곳으로 뛰어갈 용기는 없지만, 내 자리에서 늘 너의 행복을 바랄게. 있잖아 미혜야, 내 불행과 행복을 나눠 가져 주어서 고맙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미혜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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