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260, 백수 9개월 차 보고
※ 이 글은 몇 달 후 나를 위한 보고서다.
오늘은 퇴사 260일째. 백수로 지낸 지 9개월 차. 요즘 저는 이렇게 삽니다.
1. 퇴사 후 활동
가. 독립출판
지난 4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썸머였다>라는 제목의 독립출판물을 출간했다. '본격 연애 에세이'라는 워딩으로 진지하게 홍보했으나, 본인은 그 책이 성장담에 가깝다고 믿는다. 독립출판물 제작을 통해 얻은 것이 꽤 많다. 부족한 창작물이 돈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자신 없는 글들을 누군가는 사랑해준다는 기쁨, 제작물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기회.
나. 커피
2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뒤 6월, 한 개인 카페 취업에 성공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의 노동을 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모아둔 돈이 떨어져 가므로 한 달에 몇십이라도 수익이 생긴다는 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한편, 구직 과정에서 대부분의 서비스 업계 사장님들이 이십 대 후반 여성을 고용하기 꺼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규직 구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요즘, 두려움이 밀려오는데...
다. 여행
퇴사 후, 치앙마이, 후쿠오카, 블라디보스톡, 그리고 대전과 경주에 다녀왔다. 여행은 마약 같아서 자주, 오래 갈수록 갈증만 더 생길 뿐이다. 8월에 교토를 다녀오고 싶지만, 백수 9개월 차라 아빠의 눈치가 보인다.
라. 운동과 수면
회사를 다닐 때 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고, 훨씬 많이 잔다. 필라테스를 주 2회 꾸준히 가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숙면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수 한 컵을 여유 있게 마시고,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인스턴트를 먹기보다는 하루 한 끼 정도는 직접 요리해 먹는다. 가장 달라진 점은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간다는 점이다. 연차를 내거나 팀원들 일감을 살피지 않고. 아프면 바로.
2. 향후 계획
가. 커리어를 향한 항해
정말, 9 to 6가 답일까. 정답일까. 매일 되묻는다. 책을 한 권 더 만들면 먹고살 수 있을까. 왜 나는 개정판 내자는 편집자님이 없지. 잡지 같은데 기고도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도 내 책을 보면 한숨만 나올 뿐... 너무 구림... 라떼아트를 좀 더 배워서 바리스타를 제대로 해볼까. 워홀을 그냥 갈까. 아빠를 이길 수 있을까. 홍보회사, 마케팅 회사, 잡지사, 출판사, 공기업. 이 항해는 몇 살이 되어야 멈출까. 내 배는 언제 항구에 정박하나.
나. 준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니까 준비를 한다. 토익을 갱신하고, 컴활 공부를 한다. (8/6에 볼 것임. 미래의 나야, 만약 이날 안 봤다면 과거의 나에게 침을 뱉어줘.) 사람인과 잡코리아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취업성공패키지 신청을 한다. 공기업 취뽀에 성공한 전 회사 동기에게 NCS 인강 계정을 샀다. 산지 두 달 째인데 한 번도 접속하지 않았지만.
3. 보충 의견
가. 퇴사 후 여유가 더 생겼느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통장 잔고는 떨어져 가고 버티기 위해서 딱 한 달 생활비만큼을 버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매일같이 자문한다. 건강해진 것 같지만 하반기 공채 시즌이 오면 이 건강이 유지될까... 퇴사 후 행복은 일시적이다.
나. 퇴사 직전 고민했던 것처럼 나는 제2의 직업, 제3의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leeeeemarch/13)
다. 부정적이고 불안한 성정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