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로 떠나고 싶었다. 사실 한국이 아니면 다 괜찮았다.
삼청동, 효자동, 누상동... 종로를 마구잡이로 걷다가 들어간 교보문고에서 책을 다섯 권이나 사버렸다. 그중에 하나가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왜, 사람들은 대개는 책을 살 때 뒤표지에 주요 문구나 줄거리 같은 것들을 읽어 보니까. 나는 책을 살 때 뒤표지를 읽거나, 혹은 책을 딱 잡고 아무 페이지나 편 다음 2장쯤을 읽는다. 그리고 좋으면 그 책을 주저 없이 산다. 『한국이 싫어서』 를 잡고 펼쳤을 때 내가 처음 본 문구는 이거였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도대체 난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해? 여기서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이런 일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겪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었어. 나는 울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어.
아빠, 미안해요. 그냥 18평에서 사시면 안 돼요?
난 여기서 도저히 더는 못 살겠어요.
지난 1월, 한창 우울증 약을 먹을 때쯤에. 원인 모를 알러지가 막 생기고 두통이 생기고 타이레놀 8알이 가방에 없으면 늘 불안하던 때. 호주로 떠나야겠다고 혼자 결심했다. 두 달쯤 고민하고는 엄마에게 계획에 대해 거창하게 떠벌렸다. 나 퇴사하고 바리스타 자격증 따고 모아둔 돈으로 유학원 알아보고 학생비자로 갈까 봐. 나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까 좀 여유롭게 어학원 등록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엄마. 거기서 1년쯤 있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한국 오면 되지. 그래도 어차피 28살이잖아. 영어 하나는 얻어 올 테니까 또 어디서 일할 수 있지 않겠어? 호주가 좋으면 계속 거기서 살게. 한국에 자주 올게. 나 영어 잘하잖아. 취준 할 때 나 토익 950점이었잖아 엄마. 호주 가 있는 대학 동기한테 물어봤는데 걔는 참 행복하대.
실제로 이민을 목적으로 호주로 떠난 대학 과 동기가 있었다. 걔는 참 똑똑하고 야무진 애였는데, 대학 때 아일랜드로 워홀을 한차례 다녀오더니 졸업하고 어딘가 취업을 했다. 또 몇 달이 흐른 후 인스타그램을 봤더니 호주더라고. 걔한테 DM을 보냈다. 잘 지내? 너 호주인 거 같더라. 나 요즘 호주로 갈까 고민 중이야, 어때 거긴? 늦은 밤 답장이 왔다. 나는 그 답장들을 캡처해두곤 며칠을 꺼내봤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는 호주에 계속 살려고 영주권 알아보고 있어. 너무 힘들게 버티면서 일하지 마 수진아. 나는 다 접고 안 돌아갈 생각으로 온 거야, 잠깐 지내보다 가고 그러려는 거면 그건 잘 모르겠어. 나라가 어디든 새롭고 외로울 거야. 힘들고, 적응 안되고…. 찾고 싶은 무언가를 꼭 가지고 가길 추천해.
한국에서 쌓아놓은 경험과 어떤 위치 같은걸 다 리셋시키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 몇 년 지내고 돌아갈 마음을 갖기엔 도피하는 것 밖에 안되고, 그러기엔 난 한국에선 좀 용납이 안 되는 나이더라고.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지내고 있어. 지금 와보니까, 대학교 때 하던 파트타임 일을 풀타임으로 하니 기분이 약간 그래. 서울에선 광고회사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여기선 언어장벽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고 좀 자부심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야. 그래서 아주 아주 가끔 그 회사생활을 계속했었으면 어땠을까 하거든.
네가 무슨 마음인지 알 거 같아. 나도 거의 1년을 맨날 택시에서 울면서 퇴근했거든. 그래도 월급이랑, 부모님 기대랑 그런 것 때문에 못 놓고 있다가 생각이 든 게, 지금 못할 짓이면 나중에도 못할 짓이겠다 싶었어. 하루라도 어릴 때 뭐든 지르자 싶어서 결정했어. 지금 후회는 없어. 그때 삶보다 나는 지금 확실히 더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으니까.
다시 돌아오면 나는 스물여덟, 아홉이 되는데. 한국 취업시장에서 그건 무지 늦은 나이다. 지금 일한 회사의 경력을 살리고 싶지 않아서 신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누가 날 받아주나. 그리고 다른 회사를 간다고 달라질까? 이럴 거면 그냥 장기여행을 다녀오는 게 낫잖아. 악착같이 모은 내 돈과 커리어, 장녀로 크면서 20년 넘게 온전히 받아낸 부모님의 기대가 나를 굴복시키고 전복시켰다.
유학원 상담도 했다. 출근해서는 노트북을 켜놓고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호주 이민성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예상했듯 아빠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며 다그쳤다. 엄마는 네가 행복한 게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를 간다고 네가 행복해지냐고 물었다. 정답을 찾고 싶은데, 그 어디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없어서 나는 망설였고 그냥 주저앉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