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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Sep 03. 2018

나도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나고 싶었다. 사실 한국이 아니면 다 괜찮았다.



책을 샀다.


 삼청동, 효자동, 누상동... 종로를 마구잡이로 걷다가 들어간 교보문고에서 책을 다섯 권이나 사버렸다. 그중에 하나가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왜, 사람들은 대개는 책을 살 때 뒤표지에 주요 문구나 줄거리 같은 것들을 읽어 보니까. 나는 책을 살 때 뒤표지를 읽거나, 혹은 책을 딱 잡고 아무 페이지나 편 다음 2장쯤을 읽는다. 그리고 좋으면 그 책을 주저 없이 산다. 『한국이 싫어서』 를 잡고 펼쳤을 때 내가 처음 본 문구는 이거였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도대체 난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해? 여기서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이런 일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겪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었어. 나는 울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어.

아빠, 미안해요. 그냥 18평에서 사시면 안 돼요?
난 여기서 도저히 더는 못 살겠어요.



 지난 1월, 한창 우울증 약을 먹을 때쯤에. 원인 모를 알러지가 막 생기고 두통이 생기고 타이레놀 8알이 가방에 없으면 늘 불안하던 때. 호주로 떠나야겠다고 혼자 결심했다. 두 달쯤 고민하고는 엄마에게 계획에 대해 거창하게 떠벌렸다. 나 퇴사하고 바리스타 자격증 따고 모아둔 돈으로 유학원 알아보고 학생비자로 갈까 봐. 나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까 좀 여유롭게 어학원 등록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엄마. 거기서 1년쯤 있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한국 오면 되지. 그래도 어차피 28살이잖아. 영어 하나는 얻어 올 테니까 또 어디서 일할 수 있지 않겠어? 호주가 좋으면 계속 거기서 살게. 한국에 자주 올게. 나 영어 잘하잖아. 취준 할 때 나 토익 950점이었잖아 엄마. 호주 가 있는 대학 동기한테 물어봤는데 걔는 참 행복하대.  


 실제로 이민을 목적으로 호주로 떠난 대학 과 동기가 있었다. 걔는 참 똑똑하고 야무진 애였는데, 대학 때 아일랜드로 워홀을 한차례 다녀오더니 졸업하고 어딘가 취업을 했다. 또 몇 달이 흐른 후 인스타그램을 봤더니 호주더라고. 걔한테 DM을 보냈다. 잘 지내? 너 호주인 거 같더라. 나 요즘 호주로 갈까 고민 중이야, 어때 거긴? 늦은 밤 답장이 왔다. 나는 그 답장들을 캡처해두곤 며칠을 꺼내봤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수진아 잘 지내?


 나는 호주에 계속 살려고 영주권 알아보고 있어. 너무 힘들게 버티면서 일하지 마 수진아. 나는 다 접고 안 돌아갈 생각으로 온 거야, 잠깐 지내보다 가고 그러려는 거면 그건 잘 모르겠어. 나라가 어디든 새롭고 외로울 거야. 힘들고, 적응 안되고…. 찾고 싶은 무언가를 꼭 가지고 가길 추천해.


 한국에서 쌓아놓은 경험과 어떤 위치 같은걸 다 리셋시키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 몇 년 지내고 돌아갈 마음을 갖기엔 도피하는 것 밖에 안되고, 그러기엔 난 한국에선 좀 용납이 안 되는 나이더라고.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지내고 있어. 지금 와보니까, 대학교 때 하던 파트타임 일을 풀타임으로 하니 기분이 약간 그래. 서울에선 광고회사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여기선 언어장벽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고 좀 자부심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야. 그래서 아주 아주 가끔 그 회사생활을 계속했었으면 어땠을까 하거든.


 네가 무슨 마음인지 알 거 같아. 나도 거의 1년을 맨날 택시에서 울면서 퇴근했거든. 그래도 월급이랑, 부모님 기대랑 그런 것 때문에 못 놓고 있다가 생각이 든 게, 지금 못할 짓이면 나중에도 못할 짓이겠다 싶었어. 하루라도 어릴 때 뭐든 지르자 싶어서 결정했어. 지금 후회는 없어. 그때 삶보다 나는 지금 확실히 더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으니까.




한심한 나는 동기의 메시지를 보고 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다시 돌아오면 나는 스물여덟, 아홉이 되는데. 한국 취업시장에서 그건 무지 늦은 나이다. 지금 일한 회사의 경력을 살리고 싶지 않아서 신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누가 날 받아주나. 그리고 다른 회사를 간다고 달라질까? 이럴 거면 그냥 장기여행을 다녀오는 게 낫잖아. 악착같이 모은 내 돈과 커리어,  장녀로 크면서 20년 넘게 온전히 받아낸 부모님의 기대가 나를 굴복시키고 전복시켰다.


 유학원 상담도 했다. 출근해서는 노트북을 켜놓고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호주 이민성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예상했듯 아빠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며 다그쳤다. 엄마는 네가 행복한 게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를 간다고 네가 행복해지냐고 물었다. 정답을 찾고 싶은데, 그 어디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없어서 나는 망설였고 그냥 주저앉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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