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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Sep 18. 2018

퇴사는 배신같았다

첫 번째 면담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디 계십니까? 면담 좀 하고 싶습니다. 고작 1년 반 다녔을 뿐인데 다나까가 입에 뱄다. 우리 회사를 다니는 여자들은 대부분 이런 말투를 쓴다. 몇 시까지 보고 드립니까? 십칠 시까지 전달드리겠습니다. 등등. 짧은 통화 끝에 팀장님을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창문 너머로 우리 팀 점포가 보였다.


 팀의 막내가 대담하게 전화를 걸어 바쁜 당신을 불러냈으니, 할 말은 뻔했다. 그즈음 나는 매일 맨얼굴로 귀신처럼 허수아비처럼 걸어 다녔다. 팀장님은 커피를 주문하곤 내게 자꾸 케익이나 빵도 먹으라고 권했다. 걱정과 애원의 눈빛이 느껴졌다. 내키지 않지만 빵 하나를 골라 들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말을 꺼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워 날씨와 팀원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그 선배가 저한테 정말 잘해줘요. 투덜대지만 챙길 건 또 다 챙겨줘요. 날씨가 이제 따뜻해지네요, 이제 걸어 다니기 좋겠어요.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세면대에 서서 거울 속 나를 보며 몇 번이나 연습한 말을 왜 이리 꺼내지 못하는지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그만두겠다는데, 돈 안 받겠다는데 왜 그게 어려울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아 뱉어냈다. 팀장님, 저 그만두려고요. 못 하겠어요 정말.


  팀장님은 왜 그러냐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내근직으로 이동해보자,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해라, 너 1년 넘게 버텼는데 아깝지 않니. 종래엔 종이를 꺼내 들고 펜을 주며 지금 힘든 걸 다 적으라고 했다. 몇 가지를 써냈더니 이거 다 당신이 해결해주시겠다고.




배신하는 기분이었다.

 

 직영점장을 거쳐 이 팀에 배치받으면서 나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수차례 감사했다. 이렇게 좋은 팀장과 팀원을 만날 수가 있다니. 친구들은 대부분 업무보다는 사람들이 힘들어 그만뒀다. 나는 그런 면에서 정말 축복받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여기까지 버틴 거였다. 선배들은 늘 먼저 전화를 걸어 막내의 어려움을 묻는 사람들이었고, 내 부진한 실적을 대신 메워주는 이들이었다. 지난 일 년간 그들은 단 한 번도 날 탓했던 적이 없었다. 팀장님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오롯이 본인이 지는 사람이었다. 어떤 업무를 처리하든 팀장님이 빽이 돼줄 거라는 든든한 믿음이 있었다. 입버릇처럼 사회에서 이렇게 좋은 어른들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내가 그만두면 내가 담당한 점포들은 고스란히 팀원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고, 인원은 그리 빨리 충원되지 않는다. 퇴사는 마치 이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내가 제일 중요한 거라고 했다. 어차피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그만두면 안 보게 된다고. 다들 그렇게 그만두고 또 새로운 사람이 오고 그런 거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이 어려웠다. 나는 원래 사람을 잘 믿고 너무 의지해서.





팀장님의 인사고과 때문은 아니었다.


 나의 퇴사가 그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때문에 날 잡는 건 아니었다. 나의 부재로 팀 운영이 어려워지는 까닭도 있었으나, 내가 아는 그는 진심으로 후배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울지도 못했다. 퇴직 의사를 밝히는 순간을 상상할 때마다, 상상 속 나는 늘 울고 있었다. 이 일이 얼마나 날 괴롭혔는지, 왜 내가 우울증을 앓고 매일 아침 코피를 쏟아야 하는지 죄 없는 팀장님을 원망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건넨 종이를 보며 이거 다 당신이 해결해주겠다고 웃는 사람 앞에서 도저히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팀장님은 종이에 리스트업 한 모든 것을 그 주에 해결해주셨다. 나는 이 문제점들이 해소되어도 한 달만 지나면 또 쌓일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님과 카레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오후엔 점포로 돌아가 업무를 처리했다.


 한 달만 더 다녀라, 하반기 인사평가까지만 다녀라. 이런 노골적인 방식으로 붙잡는 동기들의 팀장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신박한(진심이 가득한) 붙잡음에 나는 홀랑 넘어갔다.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그만둘 마음은 없는데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생각했다. 마음 잡고 더 다녀보자고도 사실 생각했다.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두 번째 퇴사 면담이 금방 다가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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