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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Sep 26. 2018

선인장 과습

하지 말라는 걸 더 못하는 사람들


 친구의 남자친구가 산세베리아를 죽였단다. 2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되는 식물이라는데, 갑자기 노랗게 변하더니 죽었다고. 그 키우기 쉽다는 산세베리아를 죽이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선인장을 세 번이나 죽인 전적이 있는 나는 마냥 웃지 못했다. 

 


 선인장을 좋아한다. 꽃다발보다 선인장 선물이 늘 낫다. 엄청 많은 종류가 있지만 무튼 선인장이라면 다 좋다. 가시가 뾰족뾰족하고 푸릇한 선인장. 온갖 선인장을 사서 늘어놓고 선인장 그림도 걸어놓고 선인장 인형도 사고 그런다. 동그랗고 파란 게 예뻐서. 


 수집하듯 사놓고는 잔뜩 시들게 만든다. 대게 나의 선인장이 떠나는 이유는 과습이다. 過濕. 필요한 양보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한 번은 선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엄마가 '선인장 다 녹았다!'며 혼냈더랬다. 물을 잔뜩 먹어서 흐늘흐늘 말 그대로 녹아내렸더라고. 손톱 끝으로 톡 치니 무너져 내렸다. 


 친구 남자친구의 산세베리아 사망원인도 과습이었단다. 잘 키워보겠다고 물을 냅다 들이부었더니 노래져서는 녹아내렸다고. 녹아내린 게 뭐냐는 친구의 물음에 구글에서 찾은 사진을 몇 장이고 보여줬다. 아니, 내 선인장도  눈사람처럼 녹아내렸다니까. 되게 우스꽝스러우면서 마음이 아팠어. 


 친구가 그랬다. 사람은 원래 하라는 걸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걸 못한다고. 초딩들 보면 손들고 횡단보도 건너라는 건 기똥차게 잘하면서, 복도에서 뛰지 말라면 허구한 날 뛰잖아. 나는 뭔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았다. 물 주지 말라고 아빠가 그렇게 자주 얘기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흙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봤다. 표면이 다 마른 것도 같고, 대충 한달 되지 않았냐며 기어이 물을 줬다. 이 선인장을 잘 돌보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휩싸여 물을 주고 또 주고. 그건 부지런한 게 아니라 그냥 인내심이 없는 거라는 걸 이제야 알았네. 하지 말라는 걸 안하는 게 진짜 어른인 것 같아. 미안해 내 선인장들아... 흑흙흣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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