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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Oct 13. 2018

소화

많이 먹고 싶어


 어렸을 때는 기능이 타고났던지 잘 삼키고 소화했다. 스물다섯이 넘어가면서 잘 체한다. 일이년 전까지는 튀긴 음식을 먹으면 체했으나 최근에는 커피만 마셔도 체한다. 속에 채워 넣은 것은 액체뿐인데 얹혀 있는 기분이 든다. 지난밤에도 자정이 넘었는데 속이 답답해 찬장을 뒤져 소화제를 찾았다. 알약을 삼키려 물을 한 컵 마셨더니 그마저도 위장 어딘가를 더부룩하게 만든 것 같았다.


 소화시키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음식이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을 배웠다. 그림 같은걸 걸어두고 선생님이 그 위에 경로를 그렸는데 나는 무슨 먹고 싸는 게 이렇게 복잡할 수가 있나 했다. 식도에서 위까지 음식물을 내려보내는데 얼마나 많은 근육이 필요한지. 뭐 하나 불편하면 전체가 탈 나는 건 당연했다. 근래의 나는 마음 한 편이 고장 나 있으니 체하는 건 늘 시간문제인 셈이지.


 식욕이 폭발해서 많이 먹고 싶은데, 넣는 족족 체해버릴 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이다. 돈 주고 사 먹은걸 토해낼 때의 심정이란... 지식도 그렇다. 빨리, 많이, 똑똑해지고 싶어서 하루에 책을 댓 권을 읽어도 소화되지 않고 체한다. 뒤죽박죽 섞여 뭐가 뭔지 구분도 안된다. 내 깜냥이 그 정도기 때문일 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만 감당하니까.


 새삼 다짐을 한다. 무엇이든 많이 먹고 잘 소화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몸의 조그만 부속품들이 고장 나지 않게 쓸고 닦아서 잘 돌아가게 만들어야지. 위장도 뇌도 튼튼한 사람이 되어야지. 나의 주머니는 아마도 천이 아니라 고무로 만들어졌을 테니 조금씩 찢기지 않을 속도로 늘여야지. 늘 비슷한 다짐을 하지만, 이번 만큼은 해내겠다고 두세번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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