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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Oct 25. 2018

퇴사 일주일 전의 소회

정리가 필요해



D-7


 고대하던 퇴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급여 정산, 잔여 연차 수당 계산, 퇴직금 확인까지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슬슬 정리하면서 시간 보내기 하는 중. 바쁠 땐 쏜살같던 시간이 어찌나 안 흐르는지. 출근해서 노트북을 열고 업무를 정리하고, 점포를 돌며 작별 인사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경영주는 갓 구운 군고구마 하나를 싸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수진이 참 잘했는데, 어디서든 열심히 해. 행복하게 살아. 너는 지금이 딱 좋은 나이야. 좋은 거 보고 좋은 걸 하면서 살아." 울컥하는 마음에 애써 웃으며 "점주님 부자 되세요, 건강하시고요." 하고 쫓기듯 뛰쳐나왔다. 이런 사람만 있었다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다녔을지도 몰라.


 10대~20대의 이수진은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스쳐 지난 인연들도 돌고 돌아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니 사람들한테 잘하자고. 예쁨 받진 못해도 미움받고 살진 말자고 생각하며 살았다. 일을 시작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서 그 소중함들을 많이 잊었던 것 같다. 이렇게 큰 이별을 맞이하게 되니 다시금 그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네. 미워 죽겠던 사람들도 다시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애틋하고 그렇다.


 가장 이별하기 어려운 건 역시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들이다. 업무를 떠안긴다는 미안함+퇴사하면 언제 또다시 볼까 하는 아쉬움. 매일 다른 선배들을 만나며 점심을 먹는다. 특별한 얘기 없이 수다를 떤다. 마치 내년에도 만날 사람들처럼. 다음 주 월요일에 사원증 반납하러 본사에 들어갔다가 모두를 만나면 눈물 콧물 쏙 빼며 오열할까 봐 무섭다. 이런 속마음을 얘기했더니, 선배는 지금은 이렇게 슬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했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은 너무 슬픈 걸.


 퇴사 일주일 전이라니! 마냥 짜릿하고 후련할 줄만 알았는데, 슬프고 슬픈 게 조금 이상하다. 빈말이 아니라 점주들 다 부자 되고, 건강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선배들도 다 행복했으면 좋겠고. D-7. 업무 정리 말고 마음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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