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1)
명동 롯데백화점 건너편에 있던 점포 하나가 문을 닫았다. 나는 그 옆 점포에 일하는 인턴이었다. 몇 번 본 적 없는 한참 위의 선배가 날 불렀다. 문 닫은 그 점포의 전기 사용량을 체크해야 된다고 했다. 내게 한전 번호를 물었고, 나는 네이버 검색창을 빠르게 킨 후 검색해서 보여줬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던 나는 유니폼을 호기롭게 벗어던지고 선배를 따라 나갔다.
문을 닫은 지 수일이 지나 새로 공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시공업체에서 이미 건물을 뺑 둘러 베이지색 컨테이너 같은 것을 세워두었고 문은 꽁꽁 잠겨 있었다. 계량기는 그 안에 있었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내 그 계량기를 봐야만 했다. 꼼꼼히 주변을 둘러보니 개구멍 같은 게 하나 있었다. 나보다 키가 20센티는 더 큰 선배가 그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인턴사원에 불과한 나는 머뭇거릴 겨를이 없었고, 엉금엉금 그 좁은 틈을 따라 기어 들어갔다.
하얀 블라우스였다. 입사 기념으로 비싸게 주고 산. 내가 가장 아끼는. 나사에 걸려 블라우스 올이 휙 나갔다.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선배는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간 멍해있다 이내 방긋 웃으며 아무 일 없다고 대답했다. 계량기를 확인했고, 우리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내가 근무하던 점포로 돌아와서 선배는 메로나를 하나 사줬다. 만만하게 봤는데 강단 있네, 했다. 녹아내리는 메로나와 내 블라우스 끝자락을 번갈아 살피며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았던 것도 같다. 진짜 일꾼이 된 것 같았달까. 인턴의 마음가짐이었나, 블라우스 하나쯤이야 내 노동력을 증명할 수 있다면 바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같고. 세탁을 한뒤 어찌어찌 수습하니 다시 입을 만해졌다. 두세 번쯤 더 입은 것도 같다. 올해 여름옷들을 꺼낼 때 그 블라우스를 다시 발견했다. 다시 입을 것 같지 않아 쿨하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