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좀 황홀한걸.
도착한 지 세 시간 남짓 지났다.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근처 식당에서 베지테리안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다시 호스텔에 돌아와 글을 쓴다. 퇴사를 하고 장기여행을 떠나는 건 오랜 계획이었다. 언젠가 나는 다시 월급쟁이로 살고야 말 듯해서. 장기간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다. 꿈만 꿨는데 정말 이렇게 와있네.
인천에서 방콕을 경유해 치앙마이로 들어왔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올 때 창문 밖으로 석양이 보였다. 해가 뜰 때보다 질 때 더 눈부시다는 걸 알았다. 하늘에서 보니 더 그랬다. 붉은 하늘을 보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조금 고민했다. 이게 맞을까. 토익공부를 할 걸 그랬나. 엄마 친구의 오빠가 차린다던 이디야 매니저나 할 걸 그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황홀했다.
지난 이십칠 년 간의 삶에서 온전한 내 선택은 많지 않았다. 대학을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할 때도 내가 고르지 못했다. 그들이 날 골랐지. 무슨 뜻이냐면, 나는 되는대로 다 쓰고 한 군데만 붙어라 맨날 기도했단 소리다. 그리고 진짜 그중에 하나 붙은 데를 갔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하면서. 그런 내게 퇴사는 온전한 내 첫 선택이었다. 아 안 되겠다, 그만둬야겠다. 내가 누리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쳐나올 용기. 그런 것들이 내겐 생전 처음이었다. 부모님이 반대하고 주변에서 말리면 곧잘 듣던 내가 고집부려 한 첫 결정.
퇴사 전에는 그래서 무서웠다. 다들 말리는데 망하면 어쩌지. 망해도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무서웠다. 근데 지는 해를 보며 맥주 한잔을 하니, 그런 생각조차 황홀하더라. 될 대로 되겠지. 내가 애쓴다고 뭐 많은 게 바뀌나.
치앙마이에 6주간 머문다. 그동안 나는 정말 많은 글을 쓰고, 읽을 예정이다. 고이 모셔두던 우쿨렐레를 가져왔다. 3곡쯤 마스터하자는 작은 소망이 있다. 어떤 날은 또 넷플릭스 보면서 누워있기만 할 거다. 많이 먹고 많이 쉴 거다.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할 거다. 언제 또 이렇게 꿀을 빨아 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