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
치앙마이는 11월부터 2월이 건기다. 1년 중 가장 극 성수기. 3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라 하루에서 몇번씩 비가 내린다. 캐리어를 챙기며 양우산 하나 넣을까 고민했는데 고민이 무색할 만큼 매일 햇볕이 쨍쨍하다. 침대에 누워 지금도 충분히 무거운 캐리어를 떠올리다, 우산따위 챙기지 않은 나를 스스로 기특해했다. 그러다 몇 개월 전 기억이 떠올랐다.
입사 1년 차 때 다녀온 리스타트 교육, 미술치료 같은 걸 했다. 빈 종이와 펜 한 자루를 받았다. 비 내리는 풍경과 사람 한 명을 그리라고 했다. 오래 생각하고 그리면 출제자의 의도를 유추해서 그리니 30초 안에 완성하라 했다. 30초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완성된 그림 속엔 단발머리 여자 한 명이 우산을 펴지 않은 채 손에 들고 비를 맞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나였다. 그림의 해설을 들으며 조금 웃었다. 뻔했으니까. 빗물이 굵고 많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거겠지. 우산은 스트레스 해결 능력을 의미했다. 그림 속 나는 심지어 날 보호해줄 우산마저 펴지 않은 채였다.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니. 나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우산이 있는데 안 쓰고 있는 거였다. 어떻게 하면 날 보호할 수 있는지 알았지만 그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 내가 이미 그러고 있다는걸 알았으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내가 조금 싫었다. 회사를 그만 두면 될 것을 결단 내리지 못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진 꼴이란.
오늘 인사명령이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수진 10월 31일부 면직. 리스타트 교육부터 10월 31일까지 나는 퇴사만이 나의 우산이라고 믿었다. 오후 들어 조금 흐릿해진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치앙마이에서, 나는 똑바로 우산을 쓰고 있는 걸까. 정말로 그 우산은 날 가릴 만큼 충분히 크고 튼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