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지난 2년간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가며 생긴 병이었다. 급식카드를 내밀며 쭈뼛대는 초등학생부터 끊임없이 중국어로만 말하는 관광객들, 편의점에서 다방커피를 찾는 할아버지. 수만가지의 이해관계로 점철된 경영주들.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상대의 눈치를 보며 대화 주제를 찾고 능숙하게 몇십 분이고 대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데 참 필요한 역량이다.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혹은 뭔가 거창한 것을(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사람과 원만하게 대화하는 법. 이런 것을 사회는 의사소통 능력이라고 부른다. 취준생 때는 자소서마다 뜻도 모르고 '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나다며 써냈지만, 이제는 안다.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 능력이라는게 어쩌면 알맹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말들을 빠르게 만들고 뱉어내는 과정이라는 걸. 티키타카 티키타카. 감정이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종종 더 큰 감정 소모를 불러온다.
회사를 그만둔 직후 일주일은 방 안에, 그 이후엔 해외에 있다. 치앙마이에서도 호스텔에서 지내다가 어제부터 아파트를 렌트해 혼자 지낸다. 혼자만의 방에서 나는 회사 다닐 때와 같은 짓들을 한다. 가령, 진심 없는 대화들. 혼자 있어 대화의 대상이 없으니 억지로 소음을 만든다. 보지도 않는 넷플릭스를 틀어두거나 팟캐스트를 재생시킨다. 콘텐츠 내용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그냥 말 그대로 플레이 상태로 둔다. 가상의 대상과 덧없는 대화를 다시 나눈다.
오늘도 한참을 걸어 다니다 방에 들어와 무심코 넷플릭스를 재생했다. 미드를 틀어두고 영어자막을 보기는커녕 집중해 듣지도 않으면서 우쿨렐레 조율을 했다. 사실, 우쿨렐레를 치는데 넷플릭스를 왜 틀어뒀는지 모르겠다. 무의미한 행동들이 내 안의 공허함을 부각시킨다. 퇴사를 하고도 극복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