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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ul 27. 2018

생일선물

스물 일곱의 내가 쉰 여섯의 엄마에게


 어제는 출근을 안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봤고, 단골 안경점에 가서 쓰던 일회용 렌즈를 잔뜩 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을 그저께 사면서 떡볶이를 사먹겠노라 결심했던게 마음에 남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를 샀다. 집에 있을 엄마는 점심을 먹었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안 받았다. 집에 오니 너무 더워서 창문을 꼭 닫고는 에어컨을 켰다. 엄마는 집에 없었다. 혼자 떡볶이를 펼쳐놓고 우물우물 먹었고, 채 다먹질 못해 남겼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선풍기를 키곤 거실 바닥에 누워서 낮잠을 잤다. 나는 그 옆에서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엄마에 대한 내용이 계속 나와서 자는 엄마 얼굴을 보며 조금은 운 것도 같다. 엄마는 금방 일어났고 날 바라보며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거냐 물었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로부터 받은 생일선물은 딱 한번이다. 10살때 아빠가 내 생일날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새벽에 안겨주었던 내 상체만한 분홍색 인형이다. 매년 친구들이 운동화를, MP3를 생일선물로 받곤 할 때마다 부러워했다. 우리집은 평범한 중산층 집이었고 나에게 운동화 하나 사줄 돈이 없진 않았다. 매년 생일마다 엄마와 아빠는 널 낳고 키워줬으니 되었다며 미역국을 끓여주고 생일 케이크를 사줬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부리던 투정은 나이가 들수록 사라졌고, 우리집은 그러려니 하며 자랐다. 네 살 터울의 남동생은 가만히 있는 제 누나를 보며 역시 그러려니 자랐다.


 낮잠에서 깨어난 엄마에게 가만히 물었다. 엄마는 나 어렸을 때 왜 생일선물을 안 줬어? 엄마는 의아해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매년 엄마 생일선물을 사줬잖아. 엄마는 나 어릴 때 왜 만원짜리 학용품이라도 선물해주지 않았어?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일곱살 때, 엄마가 서른 여섯일때 우리는 서울에 왔다. 엄마와 아빠는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모든 생활의 기반은 그곳이었다. 아빠가 다니던 은행이 IMF 때 문을 닫았고, 아빠는 서울에 있는 은행으로 직장을 옮겼다. 맏딸인 나의 초등학교 입학과 맞물려 우리 가족은 서울에 왔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의 모두를 서울에서 보냈고 내 삶의 뿌리는 이곳, 서울에 있다. 


  엄마는 대구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엄마, 언니들과 친구들은 모두 대구에 있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내가 첫 아이였고, 근데 서울에 혼자 와서 누구 하나 육아에 대해 물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엄마도 우리가 어렸을 때 63빌딩도 데려가고 한강에도 놀러가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 잘 몰랐다고. 서울 애들은 그렇게 매년 생일 파티를 하고 그러더라는 걸 우리가 다 크고 알았다고. 그냥 가만히 두면 잘 자랄까싶어 안일하게 키웠다고. 그게 그렇게 미안하다고 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가 잘못한 게 대체 무어야. 엄마가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엄마는, 우리 엄마는 다 자란 어른이 된채 서울에 와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섭고 힘들 때마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이 넓은 서울에서 어떻게 버틴 걸까. 울지도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심장이 두 동강 나는 것만 같았다.


 엄마, 이제 다 괜찮아. 내년 내 생일에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엄마가 좋아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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