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by 이마치


새벽 네시에 퇴근했다. 자정쯤 통화를 했는데, H도 아직 일하는 중이고 새벽 세네시는 되어야 끝날 것 같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전화를 걸었더니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해서 이렇게 물었다. 지금까지 일한 거 아니었어? H의 담담한 목소리가 먼 곳에서 울렸다. 잠깐 회식했어.


늘 외로움은 쌓이기만 하고 해소되지 않았다. 늦게까지 일한 것도 서러운데 너까지 어떻게 이러니. 회식하면 한다고 카톡 하나 남기기가 어려워? 연애의 클리셰같은 질문 끝에 그 말을 결국 내뱉었다. 너 나 사랑하긴 해? 천년 같던 침묵 끝에 H가 대답했다. 아니. 아닌 것 같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덜컥 겁이 났다. 황급히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주말에 만나서 얘기하자. 알겠지? 얼른 자자.




일요일 아침, 서울역에서 보자는 카톡이 왔다. 인천에 사는 H와 쌍문동에 사는 나에게 서울역은 딱 중간 지점이었다. 9번 출구 앞 쏘카존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이용했다. 주변의 맛집과 카페는 다 알았다. 말도 안 되게 추억이 많은 곳에서 이별의 대화를 나눈다는 게 정말 말이 안 됐다.


어떤 카페에서 2시간쯤 대화를 나눴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렸고, H는 챙겨 온 휴지를 건넸다. 이렇게 추운데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며 잔소리를 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건 좀 홧김이었지만, 이렇게 만나다 보면 빠른 시일 내에 그 날이 올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반박하지 못할 말들에 나는 계속 울기만 했다.


서울역까지 함께 걸었다. 사내연애였던 우리는 늘 주변에 예민했고, 특히 H는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다. 나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H에게 말했다. 마지막이니까, 여기서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날씨도 너무 춥잖아.


부산행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방송이 크게 흘러나오던 서울역 광장에서, 그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H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정말 헤어져야 하냐고 묻는 내게 H는 너 이럴 줄 알았다고, 그만 울라고 다독였다. 아무리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달래도 나는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다. 덜 집착하고 더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후회되었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지 못한 게 내 탓인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몇달 후, H는 곧 여자 친구가 생겼다. 동기였으니까 건너 건너 소식이 빨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그냥 나만큼 사랑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도 그때는 꼭 그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길지 않았던 연애는 물론, 이별의 순간에도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많이 외로웠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외로워지는 것 같아. 괴로운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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