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눈부시게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한강에서 열린 어느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예년에 비해 라인업이 훌륭했다. 어느 하나 나쁜 것이 없었다. 화장도 잘 먹었고, H는 여느 때처럼 예쁜 옷을 입었고, 그 날은 아주 드물게 싸우지 않은 날이었다.
해가 저물자 한강변을 걸었다. 첫 번째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맥주를 샀다. 아무 의자에 아무렇게 앉아 말도 안 되는 수다를 떨었다. 저 멀리 가을방학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눈이 마주쳤고, 들고 있던 모든 걸 그대로 쓰레기통에 쏟아버리곤 손을 잡고 뛰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그녀의 청량한 목소리를 들었다. 엔딩곡은 당연하게도 '가끔은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였다.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나는 H의 어깨에 기대 이 노래를 들으면서 P를 생각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없앨 수 없는 생각이었다. 내 세상에서 P 같은 사람은 P 밖에 없었다. 백번을 생각해도 그랬다. 후렴구가 반복될수록 눈물이 차올랐다. H의 등 뒤에서 몰래 눈물을 닦았다.
그 노래가 끝나자 프롬의 공연이 이어졌다. 사뭇 다른 분위기의 노래가 흘렀다. '달밤댄싱'이 시작되자 아티스트가 외쳤다. 모두들 앞으로 나와서 춤을 춰요! 나는 H의 눈을 바라보면서, 달밤에 춤을 추면서, 잠시, 아니 아주 오래도록 H가 P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그때 내가 P에게 모질게 굴어서, 이렇게 벌 받는 거라고. 내가 P에게 못한 만큼 H가 내게 못하는 거라고. 이 외로움과 사랑의 부재는 다 천벌이라고.
H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원망하고 슬퍼했지만 어쩌면 내 사랑도 온전치 못했다. 늘 H에게서 P를 찾았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그때의 외로움이 내 탓이었다 여기는 걸까. 그날 H는 내 눈동자 너머에서 다른 남자를 발견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