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그림자, 빛2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완벽주의
마음에서 몽글몽글 일어나는 불안을 막기 위한 도구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완벽주의적인 행동입니다.
완벽주의자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 중에서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인정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완벽주의의 성향을 파악하기가 어렵죠.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혹은 "이래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룰에 따라
공동체가 혹은 사람들이 움직이길 바랍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좀 더 강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스스로 이끌어 가면서
자신이 생각한 올바른 방향으로 일을 이끌어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며 컨트롤할 수 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불확실성은 낮추고
불안감도 가라앉는 것처럼 느낍니다.
어쩌면 이들에게 일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과 칭찬보다 자신의 기준과 그것을 충족했다는 만족감입니다.
"실수를 무능의 증거"로 여기는 마음이 되었다면
완벽주의적인 행동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사용한
완벽주의적인 마음과 행동이 삶을 휘감아 버리면,
기쁜 일보다 잠재적인 문제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걱정하는데 익숙해져 다른 정신적인 활동을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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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함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온다."면
확실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해
상황과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정리된 상태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확실성을 부여하기 때문이지요.
정리에는, 기준점과 그에 따른 질서가 필요합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렇게 가치의 기준점을 세우면
무엇을 앞에 두고, 무엇을 그다음에 둘 것인지
우선순위가 정해집니다.
우선순위에 맞게 시간과 마음을 분배해서 쏟고 있다면,
보람과 기쁨의 크기만큼 불안을 좀 더
희석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제거"가 아닌 "끌어안고 살아가기"입니다.
불확실한 것들과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끌어안고 살아가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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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소소한 즐거움이 주는 평안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에
시간이 지나고, 평안한 마음이 됩니다.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자 주변에 있던 빛이 보입니다.
인생에는 그림자만 있지 않습니다.
빛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생의 어둠은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지만,
인생의 즐거움은 노력에 의해서 재발견되고는 합니다.
마음에 힘이 되는 추억, 셀레였던 경험, 마음 따뜻했던 시간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기억하고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만이 아닌
지금, 여기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음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이들과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평범하지만 일상의 생기가 담긴 거리를 걷다 보면
'불안'이란 단어가 마음에서 조금씩 희미해집니다.
불안을 너무 가까이, 오래 들여다보느라
충혈되어 버린 마음의 시선을 돌릴 만한
장소와 상황이 필요합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불안을 다루는 데는
크고 요란한 즐거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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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그리고 그림자와 빛,
세상은 꿈꾸던 대로
더 다양해지고,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불안해졌습니다.
급한 물살로 흘러가는 세상 속에 빠진 자처럼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
기준점도 방향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답도 없는 불확실한 것들이 더욱 많아져 갑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불안하고,
내가 정말 잘 선택한 것인지 불안하고,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기준점도 없고, 기준점을 가진 자도 없다면
그 누구도 "네가 옳다, 틀리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랬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를 바라보며
무의식 중에 각자 가야할 길을 추측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수많은 선택과 그 안에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했지만,
정해진 틀도, 기준점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이 감정을 우리가 찾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대혼돈의 세계에서 우리의 불안은 필연적입니다.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옵니다."
그래서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는 갈망합니다.
확실한 것 위에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마음이 변해도,
관계가 변해도,
상황이 변해도,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확실한 것이 있다면....
항상 진리가 되어줄 수 있는 기준점이 있다면....
새해, 다시 떠나는 여행길
불안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불안이 힘이 되어
빛을 찾으려는 여정도 시작됩니다.
새해, 불안 만을 바라보며
주저앉았던 두 다리를 일으켜봅니다.
불안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빛을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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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잉활동이 불안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는 문장에 이끌려
읽어내려갔던 <왜 나는 늘 불안한 걸까> 의 도움을 받아
불안을 들여다보려고 적어내려간 글입니다.
브런치에 적은 이전의 글,
"새해 그리고 불안" https://brunch.co.kr/@leeeum/251 에 이어
써내려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