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어때서

by 이음음

이유가 있던지, 이유를 찾을 수 없던지, 마음이 잘 흔들리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딱딱해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무기력한 듯, 생기가 사라진 듯, 활동을 멈춘 몸과 마음이 침묵 속에 머무는 시간.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산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러한 상태를 '우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움직이고 변하는 것 위에 무엇인가를 쌓을 수 없듯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마음 위에 하나 둘, 생각을 쌓아갈 수 있다면 우울도 그리 나쁘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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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


정신분석가 오토 컨버그는 말한다. 세상에는 "우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울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하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여본 적이 없기에 이들은 안 좋은 감정이 생기면 이를 느끼기 전에 밖으로, 정확하게 말해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린다."


자신의 마음 그릇에 담긴 우울이란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는 한다. "우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울한 감정은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워서 빨리 제거해버려야 할 대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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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이야"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은 마음의 두 가지 상태에 대해 들려준다.

"편집 분열 자리" 그리고 "우울 자리"

편집 분열 자리
: 공격당할까 봐 불안하고 그래서 나를 지켜야 할 거 같아서 고슴도치처럼 웅크리면서 뾰족해지는 상태

우울 자리
: 마음에 여유가 생겨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조금은 더 느긋한 상태


클라인은 인간은 평생 동안 편집 분열 자리와 우울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타인과 충돌이 일어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다가도 (우울 자리) 궁지에 몰리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화를 내기도 하는(편집 분열 자리).


"우울 자리"라는 마음 상태가 좀 더 건강한 사람의 마음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신분석가 클라인은 왜 "우울 자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우울 자리의 핵심은 '너 때문이야'라고 하는 대신에 '나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말해 내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울은 "나 때문이야"라는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었다. 클라인은 그러한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우울해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우울 자리'라는 마음 상태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책임지려는 성숙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벌어진 상황과 타인의 감정에 대한 원인을 나로 돌리는 마음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지치고 고통스러움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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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야 할 우울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삶에 쉽게 절망하는 이유는 "삶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는 기대와 욕망을 부추긴다. 욕망과 현실의 간극 사이로 떨어져 버린 절망감의 우울. 관계 속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설정하고 써내려간 시나리오로 인한 우울.

분명, 침묵의 고요함이 아닌 절망의 파괴로 치닫는 위험한 우울은 존재한다. 그래서 우울은 조심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다. 하지만 이 안에 숨겨진 생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예술가들이 보여주었듯이.



루브르 박물관의 수많은 명작 앞에서 감탄했던 시간이 자주 그립다. 그곳에서 만났던 그림들은 빨강, 노랑, 파랑 등의 밝고, 명쾌한 컬러만으로 채워져있지 않았다. 회색, 카키, 검은색 톤의 어두운 컬러가 적절하게 섞여 그림은 깊이와 감동을 전해주었다.


우울이라고 말하는 시간에 감탄하며 오래 머물러 있던 그림들을 떠올린다.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붓이 창조자의 아름다운 손에 있다면, 우울도, 무기력도 허무함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두운 물감으로 칠해진 시간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기 위한 여정 가운데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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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시선을 가진 정신과전문의 김건종 선생님의 <마음의 여섯얼굴>의 책의 내용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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