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만남
낯선 감정으로 비현실적인 시간에 멈춰서 있던 순간이 있다. 그녀와의 만남이 그랬다. 소아마비로 팔과 다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치우치던 그녀. 대화 중에 흔들리던 몸이 잠시 멈췄다. 눈에 띌 만큼 예뻤던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대칭점에 있다고 생각한 두 세계가 마치 한 사람 안에 담겨있는 듯했다.
우리는 찻집에 마주 앉았다. 몸과 함께 흔들리던 목소리에 쑥스러움과 들뜬 마음을 담아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글을 쓰고 있다고.
오랫동안 앉아서 글을 쓰면 몸이 아프다던 그녀가 메일로 그동안 써온 글을 보내주었다. 수십 장의 A4용지에 담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자주 멈춰야 했다. 몸의 한계가 삶의 한계로 이어지며 아파하고 울었던 흔적들. '이렇게 태어난 건 어찌할 수 없어.'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자신 앞에 세워진 한계의 벽을 부수고 또 부수고 있었다. 벽을 깨기 위해 그녀가 들고 있던 도구는 글이란 작은 망치와 간절함 뿐이었다.
한밤에 느닷없이 닥치는 통증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고통을 이겨내며 써 내려간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없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계속 나아가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 간절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내가 간절함을 놓으려 했던 건, 몇 번의 실패가 쌓이고 나서였던 것 같다. 간절하지 않다면, 실패할 일도 없으니 그럭저럭 살아가고 싶었다.
찻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다. 늦은 겨울에서 이른 봄으로 가던 길목에 잠시 멈춰 섰다. 봄햇살이 너무 좋았고 마침 나에게 카메라가 있었다. 그녀의 흔들리던 몸이 사진 속에서 멈춰 섰다.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했던 그녀의 미소가 담긴 사진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이 비현실적이었던 시간으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모순적인 두 느낌이 하나의 시간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막 도착한 봄의 햇살과 이제 막 떠나려는 겨울의 바람. 고운 인물화의 주인공 같던 그녀의 얼굴과 기울어지며 흔들리던 그녀의 몸. 꿈을 향해 들끓던 20대의 열정과 점점 굳어버리는 몸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현실.
그녀 안에 두 삶이 있었다. 어찌할 수 없이 포기한 삶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삶. 서로 다른 두 삶이 한 사람의 인생에 엉켜 있었다. 수년이 지난 후, 그녀를 떠올리며 내 안에도 두 삶이 뒤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포기한 삶과 아직 포기하지 못한 삶.
몸이 아닌 마음에 그어둔 한계는 나에게 포기한 삶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포기한 부분이 인생 전체의 실패라도 되는 듯 저 멀리 던져두고 살았다. 그러나 포기했던 시간 곁에도 아름다운 추억이 쌓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포기는 실패가 아니었다. 꼭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나서 성장했고, 단단해졌다. 포기도 인생의 한계도 몰랐다면,
여전히 내가 창조주인 것처럼 내 인생과 타인의 인생까지 진두지휘하겠다는 독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포기도, 한계도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것이 성공이라는 말은, 탐욕스러운 마음들이 지어낸 허상일 뿐이었다.
유명한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세상에 그저 "던져진 존재"라면, 우리는 굳은 자유 의지를 갖고 선택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몸을 부수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인생의 길을 만들며 전진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깃발을 들고 쉼 없이 달려가 발로 밟은 만큼 내 땅이 되는 곳이었던가. 예상하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닥치면 한 사람의 인생도, 하나의 국가도 멈추고 만다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포기와 한계라는 단어 앞에서 아파하고 슬퍼하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포기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삶이 있었고, 한계 속에서 있었기에 안정적이고 평온했던 삶도 있었다. 포기와 한계라고 선을 그어둔 것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처럼 받았던 시간이 있지 않았던가.
어딘가 살고 있을 그녀처럼 나 또한 두 삶을 살아갈 것이다. 포기한 삶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삶.
대칭점에 있다고 생각했던 두 삶이 한 인생에서 만나게 되리라는 소망을 갖고.